학회 다녀왔음 by Lucypel

지난주 금요일에 돌아온 학회를 인제 쓰는 배짱. (...)

APCTP는 Asia Pacific Center for Theoritical Physics의 준말로
우리말로 바꾸자면 아시아 태평양 이론 물리 센터, 정도가 된다.
굳이 응집 물질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들도 많이 학회를 열곤 하지만
역시 나는 나 하는 분야의 학회에나 따라다니는 실정. (...)

이번에는 피닉스 파크에서 2월 1일부터 5일까지 열렸는데,
주로 구리 산화물과 철 산화물을 기반으로 한 고온 초전도체에 대한
이론적인 해석과 분광학 실험 결과를 다루는 학회가 되었다.
여기저기 유명한 분들도 많이 오셨고 내용도 좋았던 데다가
무엇보다 화수목 3일 동안 오후 일정이 없다는 사실(!)이
이번 학회를 빠질 수 없도록 만들어 주었다.

당연히 내용은 다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유익했다.
나야 뭐 이론은 거의 못 알아듣고 실험도 절반 정도 알아들었지만,
구리 산화물 이론은 고온 초전도체를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부분이니만큼
한 단어라도 더 들어두면 나중에 도움이 될 게 분명한 것은 알 수 있었다.
분광학 쪽 실험에 대해서 더 알 수 있었던 것도 큰 도움이었고.

스키장에서 꿀맛같은 세번의 오후를 맞이했지만
알 사람을 아다시피 스키를 탈만한 입장은 아닌 나라서
조용히 못 읽은 책이나 읽고, 게임이나 하고, 글이나 쓰려고 했는데,
막상 시간이 남으니 잠만 자게 되더라. (...)

오전 일정 끝나고 점심 먹고 방에 들어오면 쓰러져 잠들고,
멍하게 일어나서 저녁 먹고 저녁 일정 듣고 와서 야식 먹고 잠들고.
매일같이 회식하는 분위기에 잠만 계속 자대니까 살만 찌더라. (...)

게다가 결정적인 문제는 학회장에 무선 인터넷이 안 된다는 점.
노트북은 들고 갔는데 인터넷이 안 되니 할 게 전혀 없는 상황.
숙소에서야 안 되는 걸 이해하겠지만 학회장에서마저 안 되는 건 심하더라.
교수님들은 어디선가 빌려다가 사용하시는 것 같기는 했지만
학생들은 유료로 네스팟 계정을 사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은
나에게 인터넷 사용료로만 만원을 넘게 사용하도록 만들었다.

그나저나 일요일 밤에 도착해서 금요일 밤에 빠져나왔는데
평일 스키장에도 왠 사람이 그렇게나 많은지, 정말 사람 많더라.
학교 스키 캠프 사람들도 보고 다른 학교, 심지어 초등학교 스키 캠프도 오고,
가족 단위나 친구 단위나, 연인 단위나, 참 스키 타는 사람 많더라.

나도 다음번에는 몸 좀 더 만들어서 스키 탈 수 있도록 해볼까나.
요즘 스키장 물이 그렇게 좋다던데. (......)

[Sports] Carling Cup Semifinal: United vs Manchester City by Lucypel

이것이야말로 유나이티드의 방식이다.
일찌감치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승리하기도 하지만,
비록 상대에게 주도권을 내어주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끝내 경기를 뒤짚어 달콤한 승리를 맛보는 바로 그것이 유나이티드이다.


1. 절대 과소평가 되어서는 안되는 소중한 미드필더 마이클 캐릭.

우리는 언제나 가장 소중한 것을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마치 공기가 없어져봐야 숨쉬는 것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깨닫듯 말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경기에서 맹활약한 캐릭을 언급하지 않는 것은 미련한 일이다.

언론은 부활한 나니의 활약에 대해서 집중 조명하고 있지만,
그리고 나 역시 그의 활약은 놀라울 정도라는 것을 인정하지만,
이번 경기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캐릭의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
본디 수비적인 위치의 중앙 미드필더로서 상대 공격의 흐름을 잘 끊어내고
정확한 긴 패스로 유나이티드 공격의 시발점이 되곤 하던 이 미드필더는
이번 경기의 후반, 전진 배치된 이후에도 환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면서
자신의 가치가 단순히 한 가지 역할에 제한되어 있지 않음을 증명했다.

일반적으로 플레쳐와 캐릭, 스콜스라는 세명의 중앙 미드필더가 나선 경기에서는
스콜스가 후방에서 패스를 전개하고 플레쳐가 2선에서 넓게 움직이는 반면
캐릭은 중앙에서 수비적인 역할과 패스라는 어중간한 임무만을 맡았었다.
물론 그러한 연결 고리로서의 역할도 충분히 잘 수행했던 캐릭이었지만
루니의 원톱으로는 공격이 원활하게 풀리지 않았던 전반이 끝나고 나자
눈에 띄게 전진하여 유나이티드 공격을 완벽하게 풀어내며 더욱 빛났다.

전반 내내 유나이티드의 공격이 틀어막혔던 것은 활동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루니는 부러울 게 없는 최고의 포워드지만 홀로 포백을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왼쪽 측면에 배치된 긱스는 또다시 리차즈와의 대결에서 상당히 밀리고 있었기 때문에
오른쪽의 나니와 2선의 플레쳐가 활발하게 움직였다 하더라도 선수가 많이 모자랐다.
후방의 스콜스 역시 기동성은 바랄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캐릭마저 뒤에 묶여 있던 것은
결과적으로 유나이티드의 전방을 경직되게 만들고 시티의 수비진을 편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후반이 되면서, 그리고 캐릭이 전진하기 시작하면서, 경기의 흐름을 바뀌었다.
빠르진 않지만 영리한 캐릭의 전방 가담이 유나이티드의 공격에 활기를 불어넣은 것이다.
특히 오른쪽의 나니와 하파엘이 측면을 공략할 때 플레쳐가 가담하여 수를 더할 때
중앙의 루니 뒤로 파고들면서 중앙에서도 숫자가 부족하지 않도록 만들어 준 것이다.
여기에 그의 영리함이 더해지면 정확한 위치 선정으로 공격의 효율성을 높힐 수 있고
또한 공을 빼앗겨도 바로 최전방에서부터 압박하여 흐름을 끊을 수 있었다.

결국 이러한 캐릭의 전진 배치가 두골을 만들어 내었다.
후반 52분 루니의 넓은 시야가 긱스에게 완벽한 패스를 만들어 주었고,
비록 긱스와 나니는 실패했지만 재빨리 가담한 캐릭이 공을 빼내면서
스콜스의 침착한 슈팅으로 일찌감치 경기의 흐름을 유나이티드의 것으로 만든 것이다.
곧이어 후반 71분에는 역시 플레쳐의 좁은 공간에서의 패스를 받은 캐릭이 직접
침착한 슈팅으로 추가골을 만들어내면서 시티를 완벽하게 압박해 버렸다.

캐릭은 언제나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는 선수인 것 같다.
그 역할이 대부분 후방에서 팀 전체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 빛나기 보다는 다른 선수들이 빛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그였다.
하지만 그의 재능과 활약은 단순히 그렇게 뒷배경만으로 치부되기에는 대단히 커서
이번 경기에서처럼 실제 경기의 승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소가 되곤 하는 것이다.

스스로가 인터뷰에서 밝혔던 것처럼 지독한 승부욕을 가진 이 미드필더는
또한 팀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줄 알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유나이티드에 어울리고,
그러한 그의 재능이 이번 경기의 유나이티드스러운 승리를 이끌었다.


2. 훌륭했지만 부족했던 맨체스터 시티.

시티의 경기력은 분명히 놀라운 수준이었다.
시티 오브 맨체스터 스타디움에서 테베즈의 두골로 달콤한 승리를 거뒀던 시티는
이번 올드 트래포드 원정에서도 테베즈가 득점하며 결승 진출의 희망을 이어갔지만,
그들이 보여줄 수 있었던 놀라움은 딱 거기까지 뿐이었다.

또다시 하파엘을 상대한 벨라미와 긱스를 상대한 리차즈는 지난번만큼 잘해주었다.
단단히 대비한 하파엘이 최대한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무너지지 않아주었고
기세가 오른 나니와 꾸준한 플레쳐가 그런 하파엘을 도와주었기 때문에
비록 1차전에서처럼 벨라미가 결정적인 역할을 해내지는 못했다 하더라도 말이다.
리차즈 역시 그 압도적인 신체 능력으로 공수에 걸쳐 긱스를 괴롭히는 데 성공했지만
여전히 노련한 긱스가 에브라의 도움을 받는 유나이티드의 왼쪽을 무너뜨리지는 못했다.

언제나 환상적인 열정을 보여주는 테베즈는 또다시 환상적인 득점을 성공해냈다.
마치 지난 시즌 유나이티드에서 보여주었던 놀라운 득점들처럼 눈부셨던 이번 득점은
후반 76분, 캐릭에게 추가골을 실점한 직후에 터져나오며 시티의 희망을 되살려냈다.
섬세하면서도 과감하게 방향을 바꿔낸 테베즈의 슈팅은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는 수준이었고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스트라이커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기량이었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유나이티드의 수준이 더욱 높았다는 것이다.
테베즈를 제외하면 위협적이었던 선수가 없었던 시티에 비해서
경기 내내 위협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던 루니와 그를 도운 나니와 긱스를 생각하면,
그리고 지난 경기에서 내어주었던 중원을 완벽하게 되찾아온 플레쳐, 캐릭 그리고 스콜스를 보면,
이번 경기에서의 유나이티드는 완벽하게 시티보다 높은 수준의 경기력을 펼쳐보였던 것이다.

반면 올드 트래포드의 관중들의 수준은 아쉬움을 남겼다.
경기 도중 코너킥을 차려던 벨라미에게 던져진 동전과 물병은
자칫 유나이티드 선수들의 긍정적인 흐름을 끊을 수도 있었고,
승패를 떠나 비신사적인 행위로 양 클럽 모두에게 좋지 못한 것이었다.
심지어 반 데 사르가 관중들을 말릴 정도로 한심했던 그 행위 덕분에
유나이티드는 완벽했던 이번 승리에서 작지만 분명한 흠을 남기고 말았다.

어쨌든 시티는 선전했지만 부족했다.
테베즈를 제외하면 벨라미도 라이트필립스도, 교체 투입된 아일랜드와 아데바요르도,
경기 내내 위협적이라는 느낌을 주지는 못했고 결정적인 기회마저 날려버리고 말았다.
애초에 결정적인 기회라는 것이 그리 많지 못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유나이티드에서 데려간 테베즈의 3득점으로 유나이티드를 위협했던 시티는
후반 막판까지 동점을 유지하며 오랫만의 칼링컵 결승 진출의 희망을 이어나갔지만
경기 종료 직전 터져나온 루니의 결승골로 말미암아 또다시 무너져내리고 말았다.
물론 기븐의 연이은 선방이 아니었다면 승패가 좀 더 일찍 결정되었겠지만,
그런 것 역시 축구의 일부이니만큼 시티는 분명 멋진 경기를 펼쳐준 것이다.

유나이티드로서는 그런 시티를 환상적으로 꺾은 것이니만큼 더욱 기세를 탈 수 있게 되었다.
헐 시티와의 프리미어십 경기에서 일궈낸 압승과 이번 준결승에서의 놀라운 역전승.
주말의 아스날전까지 승리한다면 시즌 후반을 위한 탄력을 제대로 받을 수 있을 것이다.

[Sports] EPL 23R: United vs Hull City by Lucypel

루니의 날이었고, 루니의 승리였다.
마치 지난 주중 시티에게 당했던 불쾌한 패배의 기억을 날려버리려는 듯,
루니는 쾌조의 경기력과 함께 폭발적인 득점력을 드러내며 승리를 이끌었다.



1. 유나이티드의 에이스, 루니.

호날두가 있었던 지난 시즌에도 나는 여전히 루니가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했었지만,
이번 시즌에야말로 유나이티드의 에이스는 루니임을 모두가 알게 되었으리라 믿는다.
반 니스텔루이와 호날두를 위해 자신의 창을 숨기고 팀을 위해 헌신하던 이 포워드는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공격진에서 벌써 리그에서만 19득점을 성공시켰다.

사실상 이번 경기의 승리 역시 루니의 경기력에 의해서 얻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전반 8분만에 스콜스의 묵직한 중거리 슈팅이 튕겨나오자 되넣은 루니의 선제골은
일찌감치 유나이티드의 기세를 살리고 상대를 포기하게 만드는 중요한 득점이었다.
게다가 후반 82분부터 종료 직전까지 연이어 세골을 몰아넣어버린 것은
실낱같이 남아있던 헐의 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리는 압도적인 것이었다.
특히 종료 직전 만들어낸 네번째 득점은 그야말로 믿을 수 없는 수준이었는데,
베르바토프의 패스를 받은 직후 세명의 수비수에게 둘러쌓여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수비의 예측보다 몇박자 빠른 슈팅으로 득점에 성공해 낸 것이다.

루니의 이러한 파죽지세는 여러 모로 유나이티드의 큰 의미를 주고 있다.
무엇보다 이번 시즌 다소 부족해 보이던 득점력에 문제가 없음을 말해주고 있고
어떤 순간에도 득점할 수 있는 에이스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음도 대단히 중요하다.
게다가 베르바토프와 오언, 긱스에 이어 나니와 박지성과도 호흡이 맞아가는 것은
호날두와 테베즈보다 루니가 갖고 있는 장점을 명확히 드러내는 특징일 것이다.

또한 루니의 활약은 다른 선수들에게도 시너지 효과를 주고 있다.
완벽한 원톱 스트라이커라고 보기는 어려운 베르바토프와 오언의 경기력 역시
그들의 투톱 파트너인 루니의 경기력이 살아나면서 함께 올라가고 있는데,
선발 출장한 오언과 교체 출장한 베르바토프 모두 나쁘지 않은 활약을 해주었다.
오언의 경우는 루니와의 짧은 패스를 통해 여러 차례 헐의 수비진을 무너뜨렸고,
베르바토프는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도움을 기록하는 등 활약한 것이다.
다만 둘 모두 득점이 터지지 않은 점은 약간 아쉬운 부분이기는 하지만
그러한 부분 역시 차차 나아지고 있음을 생각한다면 성급할 필요는 없다.

유나이티드라는 거대한 클럽의 에이스라는 숙명을 짊어지게 된 젋은 포워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밝게 빛나며 자신과 클럽의 가치를 더욱 끌어올리고 있다.
그리고 그런 루니와 함께라면 남은 시즌도 전혀 어렵지 않아 보인다.



2. 정신력이 달라진 나니.

지난 겨울 유나이티드와 관련된 이적 시장에서 가장 시끄러웠던 것은 나니의 거취였다.
호날두의 영입 성공 이후 이어졌던 이 포르투갈 윙어의 영입은 큰 기대를 모았었는데,
탁월한 신체 능력과 감각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체력과 이기적인 움직임만을 보여주면서
유나이티드 팬들에게서 차츰 관심과 사랑을 잃어가고 있었던 나니는 결국
퍼거슨 감독을 원망하는 듯한 뉘앙스의 인터뷰가 언론에 공개되면서
유나이티드를 떠나게 될 것이라고 언론에 의해 알려졌었다.

퍼거슨 감독 역시 그를 오랜 시간 기용하지 않으면서 그러한 소문에 무게를 실어주었지만
이번 경기를 통해 오랫만에 그에게 기회를 주었고, 그 역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면서
나니 역시 퍼거슨의 성공적인 영입 중 하나로 기록될 수 있는 가능성을 남겨놓았다.

나니에게서 무엇보다 달라진 것은 그의 마음가짐으로 보인다.
공을 일단 받으면 두번 세번 공을 친 후 스스로 돌파 혹은 마무리 지으려 했던 그는
공을 잡자마자 패스 혹은 돌파로 재빨리 결정하며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었고
이전보다 패스와 크로스의 수가 많아진 점 역시 눈에 띌 정도로 바뀌어 있었다.
여전히 다소 과감한 슈팅과 돌파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무리하는 수준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냄비 근성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그의 재능은 과거에도 인정할 만 했었다.
내가 이전부터 줄곧 요구했던 것은 공격 흐름을 끊지 않는 빠른 패스였는데,
현재 유나이티드가 보유하고 있는 윙어 가운데 가장 폭발적인 신체 능력에
이번 경기와 같은 동료들과의 호흡을 보여준다면 걱정할 것이 없는 것이다.

순간 가속력과 신체의 균형은 이미 최정상급 선수의 수준이고
묵직한 슈팅과 날카로운 크로스는 유나이티드에 꼭 필요한 것이었다.
그렇게 뛰어난 재능을 제 때에 활용하지 못했기에 아쉬웠던 나니가
몇주간의 시련을 겪고 난 뒤에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날기 시작한 것이다.

과연 퍼거슨 감독이 나니를 변화시킬 수 있었던 방법은 무엇일까.
단순히 경기에 출장시키지 않는다고 해서 선수가 변한다면
세상 어떤 감독도 선수 때문에 고생하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에,
새삼 퍼거슨 감독의 용병술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3. 돌아온 그리고 떠나간 퍼디낸드.

퍼디낸드의 복귀는 유나이티드에게 있어 더할나위없이 반가운 소식이었다.
센터백 전원이 부상에 시달리던 최악의 시간은 지나갔다 하더라도
퍼디낸드의 장기 부상 속에 비디치 역시 잔부상에 계속 시달리고 있었고
덕분에 브라운과 에반스가 정상이 아닌 몸으로 계속 투입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퍼디낸드와 같이 경험 많은 센터백이 없는 조합에는 언제나 불안한 구석이 있어서
반 데 사르가 복귀하기 전까지는 언제나 가슴 졸이며 경기를 지켜봐야만 했었다.

그리고 퍼디낸드가 복귀한 유나이티드는 훨씬 더 단단해졌다.
비록 상대가 헐 시티이기는 했지만 퍼디낸드 역시 복귀 첫 경기였고,
어쨌거나 이전의 경기들보다 훨씬 더 안정적인 느낌을 줬다는 것은 분명하다.
좀 더 여유있는 유나이티드의 수비진은 공격진이 몰아칠 수 있도록 받쳐주었고
그것이 루니의 기록적인 4득점이 나타날 수 있는 중요한 밑바탕이었던 것이다.

퍼디낸드가 보여준 또하나의 강점은 정확한 패스 전개였다.
센터백 가운데 가장 뛰어난 수준의 패스를 할 수 있는 퍼디낸드의 장점은
잔뜩 틀어박혀 있는 상대 수비진을 앞에 두고 공격을 전개하기 쉽게 했고
역습 상황에서도 보다 빠른 공격 전개를 가능하게 했다.

하지만 그렇게 유나이티드의 무실점 대승을 이끈 퍼디낸드는 곧장 떠나갔다.
상대 포워드와의 몸싸움 과정에서 불필요한 폭력적인 행동을 한 것이 걸리면서
경기 이후 FA로부터 4경기 출장 정지라는 중징계를 받게 된 것이다.

기량 면에서는 어떤 센터백과 겨뤄도 부족하지 않을 퍼디낸드는
언제나 정신적인 부분에서 단점을 보이며 아쉬움을 남겼던 것이 사실이다.
종종 집중력을 완전히 잃어버린 한심한 경기로 패배의 빌미를 만들곤 햇었고,
이번 경기에서처럼 쉽게 짜증을 부리며 불필요한 반칙을 하기도 했었다.
결국 이러한 정신적인 문제가 또다시 드러나면서 징계를 받게 되었고,
이제 30대 중반을 향해 가는 노장에게 더욱 잘할 것을 바라게 되었다.

이 경기는 그렇게 퍼디낸드의 존재감을 새삼 느끼게 한 경기였다.
그의 장점도 중요했고, 그의 단점도 커다란 흔적을 남기고 말았다.
한낱 팬으로서는, 그저 그가 더 좋은 상태로 더 많은 경기에 나올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유나이티드는 이번 대승을 통해 분위기를 확실히 뒤집을 수 있었다.
다음 주중의 시티와의 칼링컵 준결승 2차전과 함께 주말의 아스날 원정까지
까다로운 상대들과의 경기가 연이어 준비되어 있는 상황에서 쾌승을 거둔 것은,
게다가 루니의 경기력을 한껏 끌어올릴 수 있었다는 것은 무척 중요한 사실이다.

이제 시즌의 후반기도 중반을 향해 접어드는 상황에서
유나이티드가 프리미어십 4연패라는 전무후무한 업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슬로우 스타터로서의 역량을 한껏 발휘해서 연승을 이어나가야 하는데,
더이상을 머뭇거리고 있을 시간이 없음은 모두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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