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EPL 16R: Asnl vs Mid

어제는 마제스키 스타디움에서 레딩이 일을 내더니,
오늘은 리버사이드 스타디움에서 보로가 일을 냈다.
그리고 오랫만에 교수님의 좌절스런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사실 오늘 아스날의 전력을 정상이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번 시즌 절정의 기량을 보여주던 파브레가스-플라미니 라인이 모두 결장했고
공격을 이끌던 흘렙과 최전방의 반 페르시가 역시 결장하면서 창끝이 무뎌졌다.
마치 루니와 호날두가 모두 빠지고 스콜스마저 빠져버린 맨유의 부진을 보듯,
아스날 역시 가장 핵심적인 선수들의 전력 이탈로 부진한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거기에 보로가 행운의 패널티킥으로 전반 5분만에 앞서 나가기 시작하자
아스날의 어린 선수들은 정신적으로도 흔들리면서 스스로 무너지고 말았다.
질베르투 실바와 디아라의 중앙 미드필더 라인은 수비 쪽에 무게를 두고 있었지만
막상 수비에서는 풀백의 뒷공간, 특히 클리시의 왼쪽이 계속 뚫리면서 불안했고,
에두아르도와 아데바요르의 투톱이 제대로 발을 맞추지 못하는 동안
로시츠키마저 쉽게 막히며 공격에서도 제대로 된 전개를 이루지 못했다.

후반 들어 에두아르도 대신 벤트너, 에보우에 대신 월컷, 디아라 대신 데니우손을 투입하며
공격적인 움직임을 전환해 보려는 벵거 감독의 시도는 다소간 맞아들어가는 듯 했지만,
벼락같이 터진 툰자이의 추가골로 분위기가 완전히 보로로 넘어가면서
아스날의 어린 선수들은 다시 한번 정신적으로 무너져 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단순히 아스날의 부진으로만 평가하기에 보로의 경기력이 상당히 좋았다.
시즌 내내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한심한 경기력을 공수 양면에서 보여줬던 보로는
이번 경기에서 이상하리만치 충만한 자신감으로 리버사이드 스타디움을 가득 채웠다.
특히 오른쪽 윙어로 출전한 오닐은 계속해서 클리시의 뒷공간을 유린하는 기염을 토했고
발빠른 투톱, 알리아디에르와 툰자이는 좌우 측면으로 계속 움직이며 아스날을 괴롭혔다.
아스날이 갖고 있는 아주 작은 빈틈, 풀백의 적극적인 공격 가담의 뒷공간을
타겟형 스트라이커를 포기하면서 선택한 발빠른 투톱 조합과
에이스 다우닝과 좌우 밸런스를 맞춘 오닐의 투입으로 공략한 것이 들어맞은 것이다.

그리고 이번 경기에서는 호쳄박-보아텡의 중앙 미드필더 라인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비슷한 수준의 팀과는 공격 전개 능력에서 상당히 부족해 보이던 이 조합은
두명 모두 수비적인 위치에서 거칠면서도 효율적인 수비 가담을 적극적으로 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강팀인 아스날을 상대하는 데에 있어 상당히 좋은 결과를 이끌어 내었다.
평소의 간결하고 아름다운 패스를 상당 부분 잃어버린 아스날은
보로의 보다 끈질긴 중원 압박에 시달리며 스스로의 장점을 포기해야 했고,
집요하게 끊임없이 아스날의 약점을 노린 보로는 결국 승리를 쟁취한 것이다.

게다가 사우스게이트 감독에게 또다른 희소식은 훌리오 아르카의 복귀.
호쳄박과 보아텡에게는 없는 상당한 수준의 패스를 갖춘 아르카가
기나긴 부상의 늪에서 벗어나 복귀전을 아스날을 상대로 치뤘다는 점은,
또한 짧은 시간이나마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다는 점은 꽤나 반가운 일일 것이다.
치른 경기보다 치를 경기가 많은 시점에서 주전급 선수의 부상 복귀는
어느 팀 감독에게나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아스날은 경기 종료 직전에 재빠른 역습으로 로시츠키가 득점에 성공했지만
그것은 시즌 전경기 득점 기록을 이어나가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을 수는 없었다.
다만 리버풀이 당한 두골차의 패배보다 조금 나은 경기였다는 자위에 불과할 뿐,
레딩보다 훨씬 힘겨운 시간을 보내던 보로에게 압도적인 경기를 내어주었다는 것은
앞으로 아스날의 행보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시즌 무패를 달리던 아스날과 리버풀이 16라운드에서 모두 패배했고,
아스날과 맨유의 선두 다툼과 리버풀의 4위 수성 등 주된 경쟁은 더욱 흥미를 더했다.
최악의 일정으로 불리는 박싱 데이 일정을 앞두고 더욱 혼전 양상으로 향하는 선두권.
각 팀의 팬들은 자신의 팀이 지옥의 일정에서 살아남기를 바랄 뿐이다.


덧. 사우스게이트 감독, 목숨 연장 신공은 대단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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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ypel | 2007/12/10 01:06 | Review: EPL/FA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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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아이리스 at 2007/12/10 01:18
보로의 페이스에 아스날이 완전히 말려들었네요... 자신들의 스타일을 잃어버린채 마음만 급한 모습을 자주 봤습니다. 가뜩이나 선수층이 얇은데 시즌 중반 이후 하나 둘 부상이라도 당한다면...
Commented by 성제양 at 2007/12/10 02:12
막장을 달려가던 보로가 갑자기 지난시즌 대인배포스를 내뿜을줄은 몰랐습니다-_-
그것도 아스날 상대로. . . 주전들이 대거 빠지니 이런 결과도 나오는군요
Commented by Lucypel at 2007/12/10 11:41
아이리스: 사실 파브리가스-플라미니가 빠져도 실바가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했었는데, 공격 부분에서의 데미지가 생각보다 심하더군요. 흠.

성제양: 사실 오늘 이상하게 선수들이 잘 뛰기는 했습니다. 특히 오닐. 다우닝도 들쭉날쭉 하다가 오늘은 괜찮은 날이었구요. (..)
Commented by 콜로또 at 2007/12/10 12:02
흘렙, 세스, 플라미나, 페르시 네명이 동시에 결장하는 건 맨유로 치면 루니,호날두,스콜스, 캐릭이 동시에 빠진 것과 비슷하겠죠. 선수층이 얇다 하시는데 저렇게 동시에 주전들이 빠져도 질베르토와 디아라, 데닐손 같은 선수가 백업이면 선수층이 얇지는 않은데.. 일단 벵거 감독님 말대로 보로가 어제 컵 대회 결승전 같이 경기를 미친 듯이 잘했구요, 에두아르도는 아직 멀었군요. 흘렙, 세스 없으니 로시츠키 혼자는 힘들고.. 첼시 경기까지는 2명 정도는 돌아와야 할 텐데..
Commented by Lucypel at 2007/12/10 12:08
콜로또: 물론 유망주들은 많지만 이미 유럽 정상권 기량을 선보이는 파브레가스나 플라미니에 비하면 디아라나 데니우손은 조금 부족한 것도 사실이지요. 에두아르도는 확실히 적응이 더 필요한 것 같습니다. 물론 어제는 공격 전개 자체도 좀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지만요. 첼시전이 힘들겠지만, 첼시도 드록바가 없으니 어느 정도는 괜찮을 듯 하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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