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곤충과, 유리와, 불과, 물의, "싸움"

"나는 뭐가 이렇게 힘드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이 영화는 설경구보다 김태희에 초점이 맞춰진 채 이슈가 되었고,
그 이슈의 중심에는 역시나 당연하게도 김태희의 연기력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잘못된 논란이 아닐까?
김태희가 비록 유명세에 비해 연기력이나 경력이 모자란 것은 사실이지만,
그와 같은 또래의 여배우들에 비해서 그렇게 "욕먹을 정도로" 모자른 것은 아닌 것 같다.
영화 데뷔작이었던 "중천"에서는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지만,
두번째 작품인 이번 "싸움"에서는 훨씬 자연스럽고 부드러워진 것도 사실이다.
이제 두번째 영화를 찍은 그에게 헐리웃 유명 여배우나 정상급 국내 여배우의
다년간의 경험과 삶의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수준급의 연기를 바라는 것은
공부 좀 한다는 초등학생에게 미적분을 잘 해내라고 다그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물론 이 영화의 매력은 무엇보다 김태희라는 배우의 자연스러운 모습이고
설경구는 튀지 않으면서도 탄탄한 연기를 보여주며 무게 중심을 잡아준다.
설혹 남자 배우가 너무 가벼웠다면 단순히 "김태희 얼굴 보기"에 불과했을 영화를
적당한만큼 이끌고 적당한만큼 받쳐주며 밸런스를 잡아준 것이 괜찮았던 느낌.

하드보일드 로맨틱 코미디, 라는 그야말로 생소한 장르를 들고 나온만큼
하드보일드한 다소간의 액션과 약간 뻔한 느낌의 로맨스에 가벼운 코미디가 섞여있다.
코미디는 다소 실없는 편이고 유치하거나 거슬리는 것도 있어서 감점 요인이 될 수 있지만
의외로 티격태격하는 느낌이면서도 꽤나 스케일이 있고 거친 맛이 나는 액션은 확실히 득점.
다소 밋밋한 느낌을 주는 구성이면서도 그렇다고 늘어지는 느낌을 주는 것도 아니면서
말 그대로 자연스러운 정도의 긴장감으로 영화를 끌어간 점 역시 괜찮았다.

극 중 곤충학자로 나오는 설경구와 유리 세공사로 나오는 김태희.
보통 대학 교수와 잘 안 팔리는 공장 주인이 어떻게 저렇게 잘 사나, 하는 의문은 차치하고,
왜 그들은 곤충과 유리를 다루는 사람으로 나오는 것일까, 하는 의문은 꽤나 마음에 남는다.

무서운 천적을 만나면 정말로 죽어버린 것처럼 모든 움직임을 멈추는 곤충 한 마리와
타오르는 불길에 산산이 부서져 버리고 만 오랜 시간 공들인 유리 세공품들.
상민과 진아의 사랑을 확인하고 매개했던 것 역시 카페의 커다란 유리 창문이고,
길고긴 싸움의 끝에서 그들의 마지막을 확인하게 하는 것 역시 공항의 유리 창문이다.

계속해서 "사과해"라고 말하는 진아와, "유감이다"라고 대답하는 상민.
영화의 제목은 "싸움"이지만 사실 말하고 있는 것은 "사랑"이다.
유리 상자 속에서 겁먹은 곤충처럼, 불길에 산산이 터져버린 유리처럼.
상민은 곤충이 죽지 않도록 물로 닦아주고, 진아를 무너뜨린 불길도 스프링쿨러로 잦아든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리는 빗줄기는 상민과 진아의 "싸움"이자 "사랑"을 마무리 지어준다.
그래, 사실 나도 뭐가 뭔지 아직 잘 모르겠고, 앞으로도 잘 모를 것 같지만,
곤충도, 유리도, 불도, 물도, 다 "싸움"이고 다 "사랑"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던 것 같다.
내 사랑은 말이지.

"미안해, 항상"



싸움
설경구,김태희,서태화 / 한지승
나의 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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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ypel | 2007/12/13 19:10 | Review: Movie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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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그라드 at 2007/12/13 19:52
마지막에 임하룡이 다시 나오는 부분을 봤다면.. 제가 말한 '크레딧이 올라간 다음'의 내용을 보신 겁니다 ^^;; 그 전에 엉덩이가 들썩 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남겨둔 주의사항이었어요 ㅎㅎ
Commented by Lucypel at 2007/12/13 21:06
그라드: 하이힐 뒤축이 누군가의 뒤통수에 날아드는 장면이라면 다행이에요. 가끔 비슷한 일이 있어서 아쉬워하곤 하거든요. ^^;
Commented by 그라드 at 2007/12/14 02:32
네 그 장면 맞아요 ^^ 저는 보통 크레딧이 다 올라갈 때까지 보곤 하는데 가끔 친구의 닥달이나 찾아간 곳이 아는 사람 일하는 곳이라는 이유 때문에 숨겨진 장면들을 놓치면 정말 아쉽더라죠! ^^
Commented by Lucypel at 2007/12/14 08:43
그라드: 막 크레딧 끝나기도 전에 불 켜고 그러면 좀 난감하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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