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ND SLAM SUNDAY, 그 두번째 경기는 첫번째 경기와
몇가지 공통점과 몇가지 차이점으로 비슷하면서도 판이한 결과를 만들었다.
첫번째 공통점은 원정에 임한 팀이 최근 몇년간의 전적에서 앞서 있었다는 점이다.
베니테즈의 리버풀이 퍼거슨의 맨유에게 득점하지 못했던 것처럼
벵거의 아스날은 로만의 첼시에게 요 몇년간 전혀 승리하지 못했었다.
물론 기록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과거의 일이고 현재의 일은 언제나 알 수 없지만
경기에 임하는 선수들에게 심리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최상위 수준의 팀들간의 경기에서는 너무나 당연하게도
원정팀들이 다소 수비적인 전략으로 경기에 임했다는 사실도 공통점이었다.
마케렐레와 미켈을 모두 수비적인 위치에 배치한 첼시의 그랜트 감독은
아스날의 창조적인 미드필더 집단을 압박함으로써 꽁꽁 묶고 싶었을 것이다.
거기에 홈팀의 전력이 완전한 정상 상태가 아니었다는 점도 비슷했다.
리버풀이 마르세유 원정으로 인한 피로가 아직 완벽히 해소되지 못했던 것처럼
어린 아스날의 핵심인 세명의 미드필더, 파브레가스-플라미니-흘렙은
지난 부상의 여파에서 막 돌아와 완전히 회복되었다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이렇게 꽤나 비슷한 양상으로 시작되었던 경기의 흐름은 완전히 달랐다.
맨유가 리버풀을 상대로 단단하게 지키며 전반 종료 직전에 선제골을 넣은 반면,
첼시는 아스날을 상대로 제대로 지키지 못하며 선제골을 허용하고 만 것이다.
실점의 주된 원인은 무엇보다도 페트르 체흐의 그야말로 한심한 실수였다.
평소에는 누구보다도 단단하고 기복없는 움직임을 보여주던 체흐의 실수는
안 그래도 포백 라인의 핵심인 테리가 부상으로 뜻하지 않게 교체됨에 따라 만들어진
상당히 불안한 알렉스-벤 하임의 센터백 콤비의 허약한 제공 장악력과 겹치면서
첼시 출신이면서 동시에 안 좋은 감정을 갖고 있던 갈라스에게 실점하고 말았다.
결국 원정이기에 수비적인 운영을 선택했던 팀이 먼저 실점하게 되었고
단단하게 짜보았던 수비진이 순식간에 허술해졌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경기는 창과 방패의 대결이 아닌 창과 창의 대결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런던 (대각선) 더비라는 특성과 맞물려
노란 피가 사방에서 튀는 피치 위의 혈투를 만들어 버렸다.
결국 그랜트 감독은, 혹은 텐 카테 수석코치, 아니 감독은, 공격적인 교체를 감행했고
마케렐레와 라이트필립스를 빼고 피사로와 칼루를 투입하며 동점골을 노렸다.
하지만 오늘의 MOM급 활약을 펼쳐준 아스날의 좌우 풀백 클리시와 사냐의 수비에 막혀
좌우 측면에서 질좋은 크로스가 올라오지 못하는 상황이 되며 공격을 풀지 못했다.
중원에서 미켈이 고군분투하는 느낌을 주기는 했지만 효율적이지 못했고
램파드는 부지런히 뛰었지만 간간히 터져나오는 아스날의 역습을 막느라 바빴다.
경기 막판 이어진 알무니아와 체흐의 선방쇼는 중립 팬들을 즐겁게 했고,
어린 거너스는 공격에 혈안이 된 첼시의 뒷공간을 유린하며 역습을 시도했지만
아쉽게도 심판의 휘슬에 막혀 득점으로 인정되지 못하는 불운으로 마무리되었다.
이러한 경기 결과와 진행 과정의 차이점 외에도 더욱 험악했던 점도
앞선 장미 전쟁과의 차이점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경기 내내 양팀 선수 사이에서 보였던 팽팽한 긴장감은
어마어마한 숫자의 경고로 기록에 남겨지게 되었고,
몇몇 선수들은 폭력적인 행위로 차후 추가 징계를 기다려야 할 지도 모르겠다.
특히 맞트레이드된 갈라스가 결승골을 넣는 동안 친정 팬들의 야유를 들었던 에쉴리 콜은
경기 종료 직전에 일어난 파브레가스와의 문제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해 버렸다.
어쩌면, 두 선수 모두 꽤 많은 경기에서 출전에 문제가 생길수도 있을 정도로.
어쨌든 아스날이 첼시를 제압함에 따라 그랜드 슬램 선데이가 마무리되었다.
1위 아스날과 2위 맨유가 3위 첼시와 4위 리버풀에게 승리를 거두었기 때문에
당분간은 아스날과 맨유의 양강 체제가 이어지며 첼시와 리버풀이 멀어진 느낌이다.
패배한 두 팀은 주중의 칼링컵 경기까지 앞두고 있기에
거기서도 패배한다면 장기간의 부진에 빠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결국은 돌고 돌아 다시 퍼거슨과 벵거의 싸움이다.
이렇게 프리미어십 최고의 격전지, 박싱 데이 시리즈가 열렸다.
덧. 근래에 첼시가 잘하기를 이렇게 바랐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
- 2007/12/17 03:23
- Review: EPL/FA
- FSHE.egloos.com/1148724
- 4 comments















덧글
GrayFlower 2007/12/17 12:42 # 답글
캐쉴리콜(돈때문에 이적했다고 붙은 별명이라네요;;)에게 쏟아지는 아유를 보면서 해설자분 말처럼 애증관계가 얼마나 깊었는지 알겠더군요. 그래도 작년 컵대회처럼 폭력사태가 안일어나고 잘 마무리가 된 경기 같습니다.^^
Lucypel 2007/12/17 13:16 # 답글
GrayFlower: 뭐, 돈 때문에 런던 라이벌인 첼시로 이적한 데다가 자서전에서 아스날과 벵거 욕도 한참 했으니 미워할만 하지요. (먼산) 이번에도 지난번만큼은 아니어도 에쉴리 콜이 파브레가스 뺨을 후리는 등 꽤나 격투기였어요. (응?)
keropark 2007/12/17 21:03 # 답글
아스날은 홈에서의 경기가 남아있으니 맨유로서는 뭐 그때까지 승점차만 안나면 될듯 하네요. 무엇보다 아스날의 박싱데이일정이 만만치 않은 팀들과의 원정 경기인지라..
Lucypel 2007/12/17 21:08 # 답글
keropark: 중립적인 입장에서의 관건은, 아스날의 영건들이 언제까지 기세를 유지할 수 있느냐가 주된 포인트가 아닐까 싶어요. 어린 선수들이고, 아직 큰 경기 경험이 없는 데다가, 팀에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는 베테랑이 아예 없는 수준이 되었다는 점은 언제 무너질 지 알 수 없다는 문제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주축 선수의 부상으로 인한 전력 저하도 언제든 나타날 수 있구요. 여튼, 아스날 무서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