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EPL 20R: ManU vs WhU

이번 시즌 들어 벌써 몇번이나 이런 전개로 승점을 놓쳤던가.
기록상 선제 득점 이후 패배는 처음이라지만 흐름은 항상 비슷하다.
기세 넘치는 강한 압박을 뚫어내지 못하고, 역습의 속도와 파괴력은 떨어지고.
무엇보다 경기 중에 선수들의 집중력과 투쟁심이 부족해지며 실점하고 패배한다.

개인적으로는 아무리 박싱 데이 주간이라지만 선수 구성에 잘못이 있다고 생각한다.
사하는 부상 이후 경기력이 대단히 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지난 경기에서는 루니와의 호흡이 살아나며 그나마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테베즈와의 호흡은 그야말로 최악에 가까운 수준에 머무르고 있고
굉장히 느려진 사하와 루니보다 공을 끄는 성향의 테베즈의 조합은 속도도 부족했다.
빠르지도 않고 호흡도 맞지 않는 투톱의 조합에게 득점을 기대하면 안 되는 법이다.

긱스의 노쇠화에 따른 속도 저하는 이미 오래전부터 문제되었던 부분이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성장하고 있는 루니와 호날두의 기량은 그런 문제를 해결했고
테베즈의 공격력까지 더해지며 긱스는 후방 지원을 담당해도 괜찮을 수 있었다.
하지만 루니가 빠지고 사하가 투입되자 이러한 양상은 완전히 바뀌었다.
호날두는 여전히 빠르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혼자서 포백을 모두 상대할 순 없다.
사하의 개인기는 돌아오고 있지만 그저 전방 어딘가에 처박혀 있을 따름이다.
헌신적인 테베즈는 사하의 속도를 맞춰주느라 역습 전개에 도움이 안 된다.
긱스 역시 전반 몇차례는 뛰었지만 그 이후까지 날아다니길 바랄수는 없었다.
결국 미드필더에 다섯명을 배치하며 단단하게 압박해 들어오는 웨스트햄을 떨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재빠르고 날카로운 역습 전개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조합이었던 셈이다.

거기에 공격적으로 활동적이지는 않은 플레쳐와 하그리브스 조합 역시 문제였다.
하그리브스는 넓게 움직이기는 하지만 수비적인 부분에서 보다 빛나는 선수이며
플레쳐 역시 보이지 않게 팀에 도움이 되는 움직임이 좋은 선수이다.
빠르게 역습으로 전환할 때 길고 정확한 뒷공간 패스를 넣어줄 선수도 없었고
스스로가 역습에 가담하여 빠르게 돌파할만한 선수도 없었던 것이다.
저조한 사하, 느려진 긱스, 겉도는 테베즈라는 정적인 조합의 공격진에
수비적인 하그리브스와 조용한 플레쳐라는 정적인 조합의 미드필더인 셈이다.
이런 조합에 공격이 제대로 이루어지길 바라는 게 문제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이번 시즌 이기는 경기에서도 보이는 문제가 덮어씌워졌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퍼거슨 감독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투쟁심"의 부재이다.

맨유가 퍼거슨 감독의 지휘 하에서 승리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엄청난 투쟁심에 있다.
팀이 이기고 있든 지고 있든 끊임없이 승리를 향해 전진하고 부딫히는 것이
퍼거슨 감독이 이끄는 맨유가 가진 최대의 장점이고 승리의 기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칸토나는 맨유 최고의 선수 중 한명으로 불리워지고 있으며
로이 킨은 적장이 되어서도 올드 트래포트에서 기립 박수를 받을 수 있다.
우리 팀 11명 뿐만 아니라 상대 팀 11명까지 압도할 수 있는 카리스마는
결국 경기의 흐름을 스스로에게, 그리고 자신의 팀에게 유리하도록 이끌 수 있다.
그리고 그러한 카리스마는 끊임없는 투쟁심과 승부욕에서 기인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맨유의 최근 모습에서 그러한 투쟁심을 보여주는 것은 루니 뿐이다.
로이 킨 이후 주장을 맡은 게리 네빌은 리버풀을 상대할 때만 불타오르는 듯 하고
긱스는 애초에 불같은 성격을 갖기에는 너무 순한 인상을 갖고 있다.
퍼디낸드는 투쟁심이라기보다는 다만 다혈질에 가까운 신경질을 보여주는 것이지
팀이 불리한 상황이 되었을 때에 팀 전체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성격은 아닌 듯 하다.
캐릭과 하그리브스, 플레쳐 등도 중원에서 자신의 일을 잘 수행하는 것이 본업이지
팀 전체를 이끌고 승리의 고지에 깃발을 꼿기 위해 전진하는 것은 볼 수 없다.

그나마 호날두와 안데르송이 그러한 활력을 갖고 있는 듯 하지만,
호날두는 팀 전체를 이끌기에는 윙어라는 위치와 개인적인 성격이 너무 강한데다
투쟁심이나 승부욕보다는 순간 순간의 아름다움에 더 많은 목표를 갖고 있는 듯 하다.
안데르송은 활기가 넘치는 플레이로 팀에 기여하지만 아직 너무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다.

결국 팀에서 승부욕의 화신으로 피치 위를 누비는 것은 루니밖에 남지 않는다.
스콜스 역시 그런 승부욕을 보여주지만 부상으로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우고 있고,
지난 시즌까지 묵묵히 팀에 열기를 불어넣던 스미스는 뉴캐슬로 떠나버렸다.
이번 시즌 루니가 포함된 경기와 그렇지 않은 경기를 다시 살펴볼 수 있다면
누구나가 분명 루니의 투쟁심이 팀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앞서고 있을 때에도 끊임없이 최전방부터 상대를 압박하고 금새 역습에 나선다.
단 한 순간의 뒤쳐짐에도, 그것이 점수가 아닌 단순한 한 몸동작이라 해도, 지지 않으려 한다.
주심이 휘슬을 부는 마지막 순간까지 공과 골을 향해 계속해서 전진해 나간다.
이것이 루니의 플레이 스타일이고, 그것이 맨유의 플레이 스타일이다.
하지만 루니가 없는 맨유는 전혀 맨유답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팬들은 선수들이 언제나 최상의 모습으로 경기에 임해주길 바란다.
그 최상의 모습이라는 것은 골이나 경기 결과, 개인 기량이 아니고
다만 단 한 순간도 승리를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말한다.
업튼 파크에서 벌어진 2007년의 마지막 경기에서는 그러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물론 웨스트햄의 전략은 대단히 성공적이었고, 맨유의 약점을 정확히 후벼팠다.
특히 칼튼 콜과 딘 애쉬튼의 투톱을 후반 들어 기용한 것은 매우 좋은 방법이었다.
퍼디낸드-비디치의 센터백 조합은 제공권에서 매우 강력한 선수들이기는 하지만
맨유의 문제는 그 센터백 조합을 제외하면 높은 공을 경합할 선수가 없다는 점이다.
그나마 브라운이 가담하면 조금 나아지기는 하지만 호날두는 수비적으로 좋은 선수가 아니고
플레쳐, 하그리브스, 긱스 등도 모두 거친 혼전에서의 경합에는 좋은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런 와중에 피지컬적인 부분이 대단히 강력한 콜과 애쉬튼의 투톱을 선택하고
세트피스 상황에서 역시 피지컬이 좋은 센터백들을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하게 하여
퍼디낸드와 비디치가 주요 선수를 모두 막을 수 없게 한 것이 유효했던 것이다.
두번의 실점 상황은 모두 웨스트햄의 센터백들이 세트피스에 가담하여 머리로 득점하였고
두번 모두 맨유의 센터백이 아닌 다른 선수가 득점에 성공한 선수들을 담당하고 있었다.
퍼디낸드의 피가 흐르고 있는 앤톤 퍼디낸드를 호리호리한 플레쳐가 막을 수 있었을까?
하지만 그렇다고 앤톤을 리오로 막기에는 콜과 애쉬튼은 다소 두려운 존재였다.

이로써 지난 시즌 맨유에게 더블을 챙겼던 웨스트햄은 다시 한번 승리를 챙겼다.
아스날이 구디슨 파크 원정에서 에버튼을 격파함으로써 맨유는 연말을 2위로 지나야만 한다.
마치 스탬퍼드 브릿지에 맹폭을 가한 빌라처럼, 웨스트햄이 올드 트래포트에 올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일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끊임없는 투쟁심과 승부욕, 절대 지지 않겠다는 강인한 마음.
넋이 나간 상태로 뛰어다니는 선수에게 붉은 져지는 어울리지 않는다.


덧.
토트넘과 레딩 경기는 재방을 봐서라도 리뷰할테다.
지난 첼시와 빌라 경기도 리뷰하지 못해서 얼마나 원통했는데. 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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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ypel | 2007/12/30 18:33 | Review: EPL/FA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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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아문 at 2007/12/30 19:42
너무도 원통하고...
경기가 끝나고 다음날 아침이 밝을 때까지 인터넷을 꺼놓고 뉴스 기사를 보기 싫을 정도로
실망스러운 패배였습니다
Commented by keropark at 2007/12/30 20:57
은근히 에브라가 셋피스에서 구멍입니다.. 올해도 에브라랑 경합한 상대가 골을 넣은적이 몇번 정도 있지요...그런데 그것도 상대적으로 브라운-비디치-리오의 높이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이겠네요;;

투지문제는 저는 하그리에게 좀 기대를 하고 있네요. 얼굴이 순하게 생겨서 그렇지 근성이 장난 아니더군요...큰무대 경험도 있구요. (사실 키노의 그늘이 너무 큰 탓이기도 합니다... 벡스가 남아있었다면 모를까..)
Commented by Lucypel at 2007/12/31 00:05
아문: 잠도 잘 안 오더군요. (;;)

keropark: 그런데 그건 작고 빠른 풀백들의 어쩔 수 없는 한계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다른 정상급 풀백들도 키가 작은 경우에는 제공권에서 문제를 드러내니까요; 하그리브스의 투쟁심은 충분한 것도 같지만 팀을 리딩할 수 있는 카리스마가 있는가의 문제와 아직 올드 트래포트에서 뛴 시간이 짧다는 점에서 부족한 것 같습니다. 공격할 때 팀을 이끄는 문제도 있구요. 뭐, 앞으로 잘 해주면 되겠습니다마는, 말씀처럼 킨만한 선수를 찾는다면 영원히 불가능할 수도 있겠지요. (먼산)
Commented by GrayFlower at 2007/12/31 02:03
첼시-빌라 경기도 혈투였다고 들었는데 중계 시간이 조금 안습했죠;;(저도 못봤습니다.ㅋ) 경기 내내 맨유가 밀렸던 경기가 아녔나 싶습니다.(중립팬 입장에서는 그닥 재미도 없었구요.)
Commented by Lucypel at 2007/12/31 09:31
GrayFlower: 결국 두 경기 모두 하이라이트만 보고 끝날 것 같습니다. ㅠㅠ 뭐, 하긴 두 경기에서 나온 골만 합쳐도 18골이니 하이라이트도 무척 길지만요.. (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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