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ports] GomTV MSL S4 32강: B조

혁명가 김택용의 저그전은 그야말로 완벽하기 짝이 없었다.
그의 빠른 손놀림은 현란한 게릴라와 더불어 연이은 멀티와 엄청난 물량을 가능케 했고,
저그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예측하는 그의 머리는 그러한 손을 정확하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러한 김택용이 자신의 조에 정상급 저그 세명을 가져다 놓은 것은 결국 오만이었다.
왜냐하면 그의 그러한 저그전 패턴은 이미 읽혀질대로 읽혀져 반짝임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김택용의 일반적인 저그전 패턴은 다음과 같다.
끊임없는, 그리고 꼼꼼한 프로브 정찰을 통해 상대의 눈치를 완벽하게 파악한다.
그리고 최소한의 비용으로 앞마당에 더블 넥서스를 완성하고 테크를 올린다.
수비에는 가능한 한 돈을 쓰지 않으면서 커세어를 모으고 게릴라를 준비한다.
빠른 손놀림으로 커세어를 잃지 않으며 리버나 다크의 게릴라로 저그를 흔든다.
저그가 게릴라에 시달리는 동안 또다른 멀티를 확보하고 다수의 게이트를 건설한다.
게이트에서 뽑아져 나온 폭발적인 물량으로 센터 싸움을 승리하며 게릴라도 계속한다.
전투 중에도 끊임없이 멀티와 생산을 하면서 상대의 멀티를 저지한다.
결국 자원도, 병력도, 전투도 빠른 손놀림을 모든 것을 가능케 한다.

물론 이러한 흐름은 그야말로 일반적인 것의 개략적인 설명에 불과하고
그의 뛰어난 예측과 정찰은 순간적인 상황 변화에도 멋지게 대처하게 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그가 가지고 있던 최대의 장점은 빠른 손놀림이었고
게릴라와 멀티와 생산이 동시에 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프로토스 선수들보다
"더많은 멀티와 더많은 병력을 단시간에 보유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제동은, 이제동이 그것을 의식적으로 노렸든 아니든, 저그의 뒷심을 이용했다.
타 종족에 비해 미네랄 당 일꾼이 가장 적은 저그는 같은 수의 멀티를 돌렸을 때
가장 오랫동안 자원 수급이 가능하기 때문에 묘한 뒷심을 발휘하는 경우가 있다.
김택용의 생산력은 그가 돈을 더 많이 벌기 때문이 아니라 더 많이 쓰기 때문이고,
멀티의 미네랄이 마르면 다른 프로토스들처럼 "저축해두었던 것"이 없어
순식간에 모든 병력 생산이 중단되어버리는 문제점을 드러냈다.

이제동과 김택용의 첫 경기는 시종일관 같은 멀티의 수로 저그와 프로토스가 싸웠다.
김택용의 현란한 게릴라는 여전히 빛을 발했고 정확한 상황 판단과 예측도 놀라웠지만
이미 드러날대로 드러난 김택용의 견제에 이제동은 버로우 개발로 센스 있게 대처했고
다수의 해처리와 빠른 업그레이드 투자, 그리고 저글링과 히드라의 적극적 활용을 선택했다.
스타크래프트를 통틀어 가장 저렴하면서도 나름 고효율을 보이는 유닛인 저글링과 히드라.
쓸데없이 뮤탈에 투자한 자원도 없었고 무리하게 울트라로 체제를 전환하지도 않았다.
저글링, 히드라, 소수 럴커에 바로 디파일러를 추가하며 근검 절약 체제를 마련했다.
적은 일꾼의 수에서 오는 저그의 뒷심은 동시간에 수급되는 자원량이 적다는 단점이 있지만
리버, 커세어, 다크, 템플러, 질럿, 드라군, 아칸 등 고비용의 유닛을 운용한 김택용에 비해
저글링과 히드라를 주력으로 선택한 이제동은 그러한 자원 수급 효율의 문제를 극복했다.

게다가 이제동은 김택용에 비해 손빠르기 느린 선수라고 보기 힘들다.
애초에 김택용의 손놀림이 주목받은 것은 그가 프로토스이기 때문이지,
다른 종족의 선수들은 이미 그보다 훨씬 빠른 손놀림을 보여주기도 한다.
김택용의 게릴라는 여전히 화려했지만 이제동은 그 게릴라에 결정적인 피해를 당하지 않았다.
멀티의 해처리가 깨지거나 주요 테크 건물이 완파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고
일꾼 피해 역시 멀티 지역의 모든 일꾼이 한꺼번에 전멸하는 장면은 없었다.
또한 기동성이 좋은 저글링과 히드라로 게릴라 병력을 꽤 잡아주면서
김택용에게 지속적인 게릴라 병력의 소모를 유도했고, 이 역시 효과적이었다.

사실 이제동의 프로토스 병력을 상대로 한 (전략이 아닌) 전술이 효율적인 것은 아니었다.
리버의 스캐럽이나 템플러의 스톰을 상대하는 병력의 움직임은 다소 굼떠보였고
6시 지역에 시도했던 드랍은 그야말로 쓸모없이 병력을 소모하기만 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플레이그가 가능한 디파일러를 위해 본진 드랍을 시도한 것은 꽤 좋은 선택이었고
적절하게 시간을 끌면서 다수의 병력을 유지하며 중원을 장악한 것은 효율적이었다.

김택용이 바쁘게 자신의 일을 처리하는 동안 이제동 역시 바쁘게 자신의 일을 처리했고,
김택용이 많은 돈이 드는 운영을 선택한 순간 이제동은 적은 돈이 드는 운영을 선택했다.
두명 모두 1억을 벌지만, 한명은 2천만원씩 다섯달을, 한명은 천만원씩 열달을 번다.
그러면서 두명은 매달 들어오는 모든 수입을 소비하는 것을 선택했다.
그렇다면 천만원씩 버는 사람은 어떻게든 다섯달만 버티면 상대보다 부자가 된다.

이어진 패자전에서 김택용은 그야말로 흔들린 모습을 보여주었다.
박명수의 "토막 본능"은 여전히 한심한 전술로 경기에 드러나 버렸지만
김택용의 예측을 벗어나는 움직임을 보였다는 점에서 승리를 만들 수 있었다.
심하게 말하면, 프로토스전을 잘 못했기 때문에 김택용은 박명수를 예측할 수 없었다.
반면 김택용의 저그전은 자료가 많기 때문에 박명수는 적당히 대처할 수 있었다.
이렇게 서로의 예측이 맞물리게 된 장면은 몇 군데서 드러난다.

첫번째는 박명수의 과감한 뮤탈 선택에 김택용이 흔들린 것이다.
김택용의 완벽한 커세어 운용에는 아무도 뮤탈로 대응할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의 커세어는 영악하리만치 도망다니면서 충분한 숫자까지 집단을 불려나가고
그렇게 시간이 끌리면 뮤탈로는 도저히 커세어를 제압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분히 호전적인 박명수는 스컬지와 뮤탈을 이용해서 김택용의 커세어를 제압했고
본진 넥서스 옆에 캐논이 없었던 김택용은 순식간에 커세어를 수비로 돌려야만 했다.
끊임없이 저그를 정찰하며 게릴라를 도우던 커세어가 수비를 위해 돌아오다니,
이미 김택용의 저그전 패턴 중 초반의 단추 하나가 잘못 끼워져 버린 것이다.

물론 김택용은 과감한 삼질럿 드랍을 선택하며 그의 천재적인 센스를 발휘했다.
이와 함께 적절한 커세어 컨트롤로 뮤탈을 효과적으로 방어해 내버렸기 때문에
박명수의 뮤탈 선택은 커세어 두기의 격추 이외에는 그럴싸한 전과를 내지 못하고
서둘러 돌아와 질럿을 막는데 사용되어야만 하는 비애를 겪어야만 했다.
김택용은 이미 섬멀티를 시도할 수 있는 상황에서 박명수는 다시 한번 공격적인 선택은 한다.
발업 히드라로 정면을 돌파하며 뮤탈로 리버를 제압하여 경기를 승리하겠다는 생각.
하지만 김택용의 방어는 무서우리만치 완벽했고 박명수의 전술은 불쌍하리만치 부족했다.
뮤탈은 리버 일점사에 실패하면서 또한 뭉쳐 있어 커세어에 완벽히 제압당했고
히드라들은 미적거리다가 리버와 캐논에 프로토스의 앞마당을 붉게 물들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김택용의 선택은 너무나 김택용스러운 선택이었고
이미 그러한 김택용스러운 운영에 익숙한 박명수는 적절하게 대처했다.
완벽한 수비 이후 김택용은 속업 셔틀에 투리버를 태워 게릴라를 떠났고
당연히 올 것을 예측한 박명수는 정확한 위치에 히드라를 배치하며 셔틀을 잡았다.
물론 김택용의 성급한 움직임이 빌미를 제공한 것도 사실이기는 하지만
박명수는 이미 김택용의 선택을 알고 있었고, 게릴라는 성공하기 힘들었다.
김택용이 게릴라를 할 수 없었다면, 박명수가 분명 유리한 상황이었다고 생각된다.
본진과 앞마당에 꽤 많은 수의 캐논을 지어야만 했던 김택용에 비해
이미 멀티를 앞마당 외에 두군데나 더 지어놓았던 박명수가 자원 수급이 좋았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리버 게릴라를 억제할 수 있었다면 박명수가 승기를 가졌을 것이다.

어쨌든 자원을 많이 투자한 속업 셔틀과 투리버는 허무하게 공중 분해되었고
호전적인 박명수의 선택은 히드라 웨이브를 통한 앞마당 돌파가 되었다.
살짝 기운 승기에 정신을 놓아버린 김택용의 실수까지 겹쳐지며
결국 저그를 상대로 기적의 혁명에 성공했던 혁명가는 저그에게 정복당했다.

물론 이번 경기로 김택용의 저그전이 무너졌다고 보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하지만 도박적인 전략 선택이 아닌 정상적인 운영이 이루어졌던 두 경기에서
김택용이 모두 자신의 전략적인 선택을 간파당하며 패배했다는 사실은 치명적이다.
과거의 강자들이 그러했듯이, 판단과 예측을 간파당하기 시작하면 그저 무너질 따름이다.
간파당한 판단과 예측이 공고했으면 공고했을수록 더욱 완연히 무너지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드디어 김택용의 저그전이 무너지는 것일까?
그러나 당분간 김택용의 저그전을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MSL에서 "광속 탈락"하며 자신의 오만을 자책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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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ypel | 2008/01/09 14:32 | Review: SL/MSL | 트랙백(1)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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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Hwoarang In .. at 2008/01/10 09:12

제목 : 곰TV MSL Season4 32강 B조
기억이 나는 이전 일이 떠오른다. 그러니까.. 곰TV MSL Season1의 결승전 때 강민이 떨어지고 김택용이 올라갔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냥 무난하게 김택용이 발리는 분위기라 생각했다.. 나도 그 때 포스팅을 했는 지는 확인을 안해봐서 모르겠지만 그 후의 포스팅에서 김택용이 삼대빵이로 이길 확률이 아니면 그냥 이길 확률인지는 정확하게 몰라도 0.3......more

Commented by hwoarang at 2008/01/10 09:12
해설을 들으니.. 직접 본 것 같네요.. ^^ 트랙백 보낼게요.. ^^
Commented by 오~굿 at 2008/01/10 12:13
글 재주가 있으시네요~ 윗분말처럼 경기를 보진 않았지만 글을 읽으면서 상상되는 영상에
저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네요~

적절한 시적 표현과 비유가 굉장히 맘에 드는 글이었습니다.
Commented by Lucypel at 2008/01/10 13:00
hwoarang: 칭찬 감사합니다. 트랙백도 언제나 감사드려요. :)

오~굿: 과분한 칭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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