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Carling Cup Semifinal: Che vs Eve

이번 시즌 잘 나가고 있다는 에버튼이기는 하지만
이번 경기에서는 도대체 왜 잘 나가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오늘 경기만 따지면 한심하고 멍청한 팀임에 분명했다.

무엇보다 경악할 정도로 멍청한 공격 전술은 프리미어십에 있는 것조차
다른 팀들에게 실례가 될 정도로 한심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루니보다도 작은 앤디 존슨을 원톱으로 기용한 4-5-1 전형의 에버튼이
시종일관 선택한 전술은 좌우 측면의 아르테타가 올려주는 크로스였다.
게다가 상대 센터백은 높이에서는 왠만한 조합에는 뒤지지 않는 카르발료-알렉스.
이 정도면 바위에 계란을 던지는 정도가 아니라 이쑤시개로 지구를 찌르는 격이다.

게다가 윙어라고는 아르테타 한명의 모습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나마 오른쪽 풀백으로 출전한 필 네빌과의 호흡은 괜찮아 보였지만
아르테타가 왼쪽에 있건 오른쪽에 있건 그만 막으면 크로스를 원천봉쇄할 수 있었고
카슬리와 오스만은 수비적으로 붙어있으면서 공격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페르난데즈는 의욕적으로 경기에 임했지만 거친 태클 말고는 보여준 게 없었고
패스는 거의 대부분 첼시의 수비에 끊기며 역습을 허용하는 데에 그쳤다.

원톱인 앤디 존슨은 상대 포백의 틈바구니에서 분전하는 듯 했지만
근본적으로 바깥쪽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것에 능한 포워드를
시종일관 패널티 박스 안에 박아 놓는 것은 그야말로 쓸데없었다.
차라리 아니체베를 선발 혹은 좀 더 일찍이라도 투입하여 포스트 플레이를 맡기고
앤디 존슨을 케이힐, 아르테타와 함께 좌우 측면을 흔들도록 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물론 네이션스컵의 영향이 에버튼에게는 치명적이기도 했다.
앤디 존슨과 발을 맞춰오던, 물론 그에게도 첼시의 수비는 버거웠겠지만, 야쿠부와
아르테타의 반대쪽에서 측면을 공략했던 피엔나르가 차출되어 사라졌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있었다면 세트피스에서만 위력적이었던 에버튼의 공격력이
보다 좋은 상태가 되었을 것임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에버튼의 창이 첼시의 방패를 뚫었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
근본적으로 중앙에서 패스로 경기를 풀어주는 성향의 미드필더가 존재하지 않고
좌우 측면에서의 로또 크로스를 야쿠부의 피지컬로 받아넣는 전술의 에버튼은
역습 상황에서도 그저 최전방으로 공을 뻥 차놓는 것 밖에는 할 줄 아는 것이 없어
그저 약팀들을 유린하면서 승점을 쌓아나가는 중상위권 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선수들은 거친 경기에 익숙하지만 그것은 그저 폭력적인 투쟁심에 불과하고
강팀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기 위해 필요한 진정한 승부욕과 투쟁심은 부족해 보였다.
도리어 에버튼보다 리그에서는 아래에 있지만 빌라는 그런 승부욕과 투쟁심을 갖추었고,
좀 더 팀의 선수들의 특성을 잘 활용하는 효율적인 전술 선택을 해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차이는 두 팀의 상위권 팀에 대한 성적으로 그 결과를 보여주고 있는데,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여덞골을 주고받는 난타전 끝에 무승부를 거둔 빌라와
안방에서 상태가 좋지 못한 첼시에게 무득점 패배를 당한 에버튼이 바로 그렇다.

에버튼 수비의 핵심인 줄리앙 레스컷도 과대평가된 선수라고 생각된다.
센터백이나 왼쪽 풀백으로 이번 시즌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는 레스컷은
좋은 피지컬과 수준급의 속도, 수비와 공격 모두에서 발휘되는 재능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좋은 모습을 보이는 중상위권 선수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정상급 선수들과의 경쟁에서는 모든 부분에서 뒤떨어지는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 1차전에서 라이트필립스와의 헤딩 경합을 패배하며 결승골을 내어주거나
종료 직전 황금같은 기회를 멍하니 날려버린 한심한 작태가 그러했고,
오늘도 결승골 상황에서 조 콜을 완전히 놓쳐버리며 상대에게 승리를 헌납하고
수많은 세트피스 상황에서 단 한 차례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말았다.
전체적으로 공수 양면에 활용도가 많은 선수이기는 하지만 그저 어느 정도일 뿐이고
빅 클럽에서 눈독을 들일만한 수준의 기량도, 가능성도, 정신력도 보여주지 못한다.
수비로서 집중력이 결여되는 부분이 자주 보이고 심리적인 안정성도 떨어진다.
마치 에버튼 팀 전체를 보는 듯한 기량의 한계가 보이는 선수라는 말이다.

결국 에버튼은 자기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팠다.
중원에 킹슬리, 오스만, 페르난데즈, 케이힐의 네명을 모두 배치했음에도
영악하게 지저분한 수비로 일관한 마케렐레 한명에게 철저하게 봉쇄당해 버렸다.
키작은 원톱을 카르발료, 알렉스, 체흐의 사이에 박아넣은 채
그저 기적을 바라며 크로스를 올려댔을 뿐이다.

첼시의 경기력도 그다지 좋은 것은 아니었다.
마케렐레-시드웰의 중앙은 다분히 수비적이고 공격 전개 능력이 부족했다.
레딩의 에이스였던 시드웰은 첼시에서 전혀 중심적인 역할을 못하고 있고
그저 클로킹 상태로 피치 위를 다니며 같은 팀 동료들에게도 무시당할 뿐이었다.
골을 넣은 조 콜도 그 장면 이외에는 그다지 눈에 띄지 못했으며
말루다는 시종일관 필 네빌에게 제압당하는 모습으로 활약하지 못했다.
최근 중앙에서 움직이고 있는 라이트필립스 역시 수비에 치중하고 있을 뿐이었고
아넬카와 함께 공격 장면에서는 마지막 결정력이 좋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첼시 팬들의 가장 아쉬운 장면은 아넬카의 크로스바 강타 장면일 것이다.
거의 4-5-1에 가까운 상태로 경기에 임한 첼시의 공격은 아넬카 혼자의 몫이었고
스스로 해결하는 데에 익숙한 스트라이커는 경기 내내 느슨하지만 날카로운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 만들어내었던 좋은 기회에서 나온 멋진 슈팅은 크로스바를 강타했고
이것이 득점으로 연결되지 않으며 첼시 팬들의 조마조마한 시간은 조금 더 길어졌다.

반면 에버튼 팬들이 가장 아쉬워해야 할 장면은 패널티킥이 선언되지 않은 순간이다.
후반 중반 에버튼이 연이은 코너킥 상황에서 첼시에게 맹공을 퍼부을 무렵,
흘러나온 공을 차지하던 아르테타는 분명 박스 안에서 브릿지에게 밀려 넘어졌고
베넷 주심은 아르테타가 튕겨나가 쓰러진 지점에서의 프리킥을 선언했다.
물론 그것이 패널티킥을 선언할만큼 커다란 반칙인가에 대한 판단은 가능하겠지만
어찌되었든 반칙이 발생한 위치는 엄연히 패널티 박스의 안쪽이었고
그것이 반칙으로 선언되었다면 반드시 패널티킥이 주어졌어야만 했다.
만약 그렇게 패널티킥이 선언되고 득점으로 연결되었다면, 경기는 달라졌을 것이다.

베넷 주심은 이 장면 외에도 경기를 매끄럽게 운영하는 데에 실패했다.
어떤 상황은 반칙을 불지 않았으면서 어떤 상황은 경고까지 주어버렸다.
어제의 경기를 주관한 웹 주심과 더불어 가장 좋은 모습을 보이는 주심답지 않게
오늘의 베넷 주심은 경기 내내 뚜렷한 기준을 갖지 못한 것처럼 행동했고
최대한 카드를 아끼던 전반과 달리 후반에는 카드를 마구 뿌려대며 경기를 과열시켰다.
서로간의 감정이 상해있는 상태의 선수들에게 카드를 마구 뿌리는 것은
진정시킬 가능성도 있지만 흥분시킬 가능성도 있는 법이다.
그리고 그 와중에 이익을 챙기는 것은 마케렐레같은 선수들 뿐이다.

무링요 감독보다 승률은 높지만 경기는 훨씬 재미없는 그랜트 감독은
이번에도 기적같은 조 콜의 행운 섞인 결승골로 웸블리행 표를 예약했다.
이번 시즌 들어 벌써 몇번째나 조 콜의 로또가 그랜트 감독의 명줄을 늘렸는지,
드록바와 칼루의 로또가 늘려놓은 것까지 합친다면 무링요의 재임 기간만큼 될지도 모르겠다.

승리 뿐만 아니라 화려하고 재미있는 경기도 중요하다면서
무링요 감독을 비판했었고 결국은 그를 짤랐던 것이 아브라모비치였다.
그렇게 무링요를 내치고 만들어놓은 팀은 더욱 화려하지도 않고 재미있지도 않은 주제에
그저 승률이 무링요 시절보다 좋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 그랜트의 첼시이다.

나는 맨유의 팬으로서, 무링요를 원한다.
그는 좀 더 짜증나도록 나를 괴롭혔지만, 그 편이 더 좋았다.

에버튼 따위는 저 구석에 쳐박혀서 토트넘과 빌라에게 배우도록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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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ypel | 2008/01/24 07:24 | Review: EPL/FA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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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GrayFlower at 2008/01/24 14:57
이 경기는 그럭저럭 하더군요. (요즘 첼시 경기는 사실 재미가 없어서 기대도 크지 않았지만 말이죠;;)
Commented by 홍돈 at 2008/01/24 15:40
모순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경기력은 비등비등하달까, 개인적으론 전혀 선호하지않는 스타일의
전술입니다만 어떻게든 이기는 거 보면 첼시팬으로서 기쁘기도 한 것과 동시에 "쟤 언제 짤리나.."
하는 생각이 겹친답니다.

아무튼 요즘 첼시, 특히 조콜은 상태가 좋을 때든 좋지 않을 때든 제몫은 해주고 있으니 만족하고,
이런 빅게임에서 골 터뜨려준 것은 감사하다고 밖엔 할 수 없겠죠 ㅎㅎ

다만 한가지 걸리는 것은 아넬카가 아직 골을 못 넣고 있다는 것.
더욱 걸리는 것은 찬스만 몇차례를 날렸다는 것.

설마 ...설마...쉐바꼴은 안 나겠...죠?
Commented by Lucypel at 2008/01/24 17:50
GrayFlower: 그래도 에버튼에게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켜봤는데 말이죠. 쯧쯧.

홍돈: 조 콜은 정말 클래스가 있는 선수라는 생각이 매번 듭니다. 첼시가 힘들다가 어떻겐가 한골 넣어서 이기는 경기를 보면 조 콜 득점이 꽤나 있으니 말이에요. 아넬카는 설마 쉐바 꼴은 안 나겠지, 라고 생각은 합니다만.. (먼산) 사실 팀 전술에 녹아들어갔다는 느낌은 조금 들지 않더군요. 원체 개인 플레이가 뛰어난 선수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다들 수비적으로 내려가 있고 제대로 패스가 들어오지 않으니, 혼자 고립되거나 겉도는 느낌을 좀 주기는 하더군요.
Commented by 홍돈 at 2008/01/24 17:55
잠깐 상기해야할 것은 아직 팀에 합류한 지 한달도 채 안된 선수라는 것인데....
하긴 쉐바처럼 오자마자 골 넣고 버러우타는 것보다야 낫겠지만말입니다.

겉도는 느낌은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 믿습니다. 흑흑.
람파드와 드록바, 칼루 같은 선수들이 돌아온다면 또 그땐 어떻게 될 지 모르겠죠.

그리고 시드웰(뿐만 아니라 벤하임에게도)은 엄청 기대했었는데 역시 레딩시절의
모습은 못 보여주는 군요. 전술적인 괴리감이 있어보이고, 선수도 별로 뛰고 싶지
않아하는 듯 보입니다. 자유이적이라 부담은 없지만, 볼 때마다 "저런 주급 도둑!"
이란 생각이 들어서 원(먼산)

암튼간에 올시즌 종료 후 첼시의 당면과제는 드록바의 거취문제 해결 및 적절한 보강
그리고 시드웰, 벤하임을 적정한 가격에 팔아치우는 것일 듯 싶습니다.ㅎㅎ
Commented by glasscage at 2008/01/24 18:18
시드웰의 모습이 가장 안타깝더군요.
뭐 가족이 대대로 첼시빠라서 첼시 들어왔다고는 하지만
과도한 벤치워밍으로 인해 자신감마저 잃어버린건지
가끔은 상대팀의 스파이같은 모습마저 보여줍니다.
오늘 수비할때 알 까지 않았으면 자살골까지 넣을뻔 했죠
미켈과 에시앙이 돌아오면 출전기회가 더더욱 적어질게 확실한 상황이니
중위권팀에 가서 출전기회를 늘리는게 본인에게는 이득일듯.
Commented by Lucypel at 2008/01/24 18:26
홍돈: 아넬카는 좀 더 지켜보아야겠지요. 벤 하임이야 사실 영입한다고 했을 때부터 "걔를 왜?"라는 생각밖에 없었지만, 시드웰은 저도 좀 아쉽습니다. 애초에 첼시에는 좀 어울리지 않는 선수라서 힘들기는 하지만, 재능은 충분히 좋은 선수로 보이는데 말이죠.

glasscage: 개인적으로 시드웰은 4-4-2의 중앙 미드필더에 어울리는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공수 양면에서 링커로서 재능을 갖고 있고 양면에 모두 일정 수준 이상 기여할 수 있는 롱 패스가 좋은 선수, 라는 느낌일까요. 헌데 첼시는 단단하게 걸어잠그는 수비형 미들과 상대를 휘저어줄 수 있는 공격형 미들을 기용하는 팀이다 보니 시드웰은 그닥 어울리지 않아 보이네요. 발락 역시 그닥 좋은 모습만 보여주지 못하는 상황에서 시드웰이 잘하리라 기대하는 것도 어불성설이겠지요. (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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