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 한국 여자 핸드볼판 슬램 덩크

많게는 30대 초중반부터 20대 초중반까지 근 10년 이상을 아우르는,
이 나이 또래의 사람들, 특히 만화책을 많이 보았던 남성들에게 있어서
슬램 덩크란 작품은 뭔가 모를 가슴 찡함과 더불어 압도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그보다 나이 많은 아저씨들이나 나이 어린 학생들은 그닥 알 수 없는
생각보다 무척이나 위대한 작품으로 남아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이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는 작품은 슬램 덩크를 필연이든 우연이든 답습했다.

물론 다시 한번 나올 수 있는 명제는
뻔한 소재와 구성은 뻔한 감동을 줄 수 있기에 강력함을 가진다.
괜히 새로운 시도를 했다가 전혀 효과를 거둘 수 없는 것에 비하면야
얼마든지 투자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좋은 소재와 구성이 뻔한 것인 법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내게 그저 슬램 덩크의 오마쥬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오랜 시간 경쟁과 반목과 갈등을 겪었던 황금 콤비의 화해와 협력은
그저 정대만과 채치수가 두 손을 마주치던 그 순간의 연장선으로 보일 뿐이고,
어린 에이스의 정신적인 성장과 팀을 위한 헌신은 서태웅의 그것과 같아 보였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눈물을 흘렸지만, 그건 우생순이 아니라 슬램 덩크를 향한 것이었다.

결국 개인적으로는 "여성" 핸드볼이 아니라 여성 "핸드볼"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출산과 육아 관련 문제나 생리 문제, 스포츠계의 여성 차별 문제를 다루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그것에 대해서 심도 깊은 생각이 깔려 있다는 느낌은 주지 못했고
그저 하나의 에피소드로 흐르듯 지나쳐 버렸기 때문에 여성 문제는 살리지 못했다.
결국 진지하게 다루니만 못한 사족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아쉬움도 남게 되었고.

비단 여성이라는 문제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구성이 매우 헐겁기도 했다.
두 주인공 사이라던가, 감독과 감독 대행 사이라던가, 노장과 신인 사이라던가,
좀 더 깊게 다뤄서 갈등과 해소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편이 더 좋지 않았을까.
그저 눈빛 몇번, 허무맹랑한 사건 한둘로 그런 갈등이 다 사라져 버린다는 건
만화책에서도 요즘은 써먹지 않는 구시대적인 시나리오에 불과해 보인다.

감동은 다른 작품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하고 구성은 신파극 수준에
여성 문제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있는 작품으로 한국 스포츠를 논할 수는 없다.
군소 스포츠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이야 얼마든지 풀어놓을 수 있겠지만,
이런 작품으로 그런 논의를 시작하는 것은 그닥 옳아보이지 않는다.

혹독한 평을 하자면, 디워보다 못난 싸구려 애국심 자극용 영화에 불과했고,
솔직한 평을 하자면, 슬램 덩크의 실사 영화 오마쥬 이상의 가치는 없었으며,
후한 평을 하자면, 잊혀지던 아테네 올림픽을 다시 환기시킬 수 있었다.


덧. 태그도 슬램 덩크로 넣으려다가 말았다. (...)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문소리,김정은,엄태웅 / 임순례
나의 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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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ypel | 2008/02/22 10:13 | Review: Movie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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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GrayFlower at 2008/02/23 17:09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최근에 슬램덩크를 다시 완독했고 또 울었습니다. 역시 명작은 언제봐도 명작이더군요.
Commented by Lucypel at 2008/02/23 17:43
GrayFlower: 매번 그렇죠. 매번 다른 게 느껴질 때도 있구요. 좋은 작품이 왜 좋은 작품인지 그런 데서 차이가 나지 않을까 싶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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