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

편지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문득 했었다.
어제였나, 그제였나.
아, 맞다.
어제는 놀았고, 그제는 술마셨지. (..)
그러면 그 전이겠구나.


이런 저런 일들로 몸도 마음도 복잡하다.

지난 주말에 해버린 이사 덕분에 일주일 내내 엉망인 방에서 살았고
새로 산 컴퓨터 녀석은 이제서야 어느 정도 쓸만한 상태로 회복되었다.
아직도 옷장과 책상은 일단 짐을 꺼내어 되는대로 처박아 놓았고
저 밖에 펼쳐놓은 잡다한 짐들은 그저 버려진 채 추위에 떤다.

연초에는 동경대를 붙더니, 이번에는 칼텍이다.
어쩌면 난 정말 복받은 사람이라 친구들이 잘 되는 걸 보는 걸수도 있고
어쩌면 난 정말 한심한 인간이라 해보지도 않고 포기해 버린 걸수도 있다.
어쨌든 지금쯤 동경대에 다니고 있을 친구 녀석과
여름부터 미국에 있을 C에게는 축하의 말을.
덕분에 며칠 정도는 밤에 잘 못 잤단 말이지. (웃음)

이사하면서 무척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생각나는 건 뭐든지 다 커다란 100리터 짜리 봉지에 넣어버렸다는 점.
빗도, 로션도, 배게도 모두 아낌없이 쳐넣어 버리고 나몰라라 했지만
아직도 내 손과 내 옷에는 이런 저런 기억들이 잔뜩 남아 있어버렸다.
게다가 여전히 어색하나마 웃는 얼굴로 인사하지 못했다.
내 입과 내 눈과 내 손은 여전히 찾고 보고 기다리고.

대학원에 들어와 새로 만나게 된 사람들에게 벌써 한번 실례를 범했다.
일단 술을 마시기 시작하고 분위기를 타버리면 잘 못 참는 성격인지라
혹여라도 내가 술기운에 헛소리에 헛짓거리를 했을까 꽤나 걱정되지만,
뭐, 어때, 어차피 지금이 아니라도 언젠가는 실수할텐데. (뭐?!)
좋은 사람들, 좋은 관계들, 그만큼 내게 복이며 사치도 없다.

슬슬 주말부터는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데 어김없이 푹 퍼져 있다.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리뷰도 두어개 있는데 엄두도 내지 못하고
지난주에 수업했던 내용들과 벌써 나온 숙제도 해야 하는데 무기력해.
오전에는 리뷰를 쓱싹쓱싹 써버리려는 계획이었지만, 인생 뭐 있나.

외롭고, 쓸쓸해.
가족과 같이 살게 되었다고 해도, 이편이 더욱.
나는 내가 뭐든지 직접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가끔은 모두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생각도 한다.

중학교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적어준 편지에서
무엇이든지 직접 하려는 생각은 고치는 게 어떻겠냐는 말을 읽고
무척이나 씁쓸하고 반가우며 괴롭다는 생각을 했다.

초등학교 일기장에서의 충격보다는 덜 했지만. (웃음)

by Lucypel | 2008/03/08 11:29 | Blog: Diary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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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annie at 2008/03/09 01:51
너도 이제 대학원에서 수많은 새 인연들과 또 친해지겠지..

나 경하 미국간단 생각에 유영이 졸압식 사진 등등 그저께 새벽에 갑자기 오만가지 잡생각이 들면서 새벽 한시 반에 조낸 통곡했다 눈물 쥘쥘.... 미쳤었나벼

내가 생각해도 조낸 추했어.... ㅋㅋㅋ
Commented by annie at 2008/03/09 01:54
술마셨단 얘기에도 섣불리 말도없이 늬들끼리만 마셨지!! 이 나쁜놈들!!!!

이라고 할 수 없게 된게 좋은건지 아닌지....

암튼 그날 새벽 내가 생각해도 내 모습이 추하긴 했어도 여전히 뭔가 서운하고 쓸쓸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수 없단 말이지..

Commented by Lucypel at 2008/03/09 10:02
annie: ... 서운하고 쓸쓸해 하지 말고 부르면 부를 때 나오라고... 대학원 사람들이랑 친해져도 친구라고 부르기는 뭐하답니다. 대부분 형이나 동생이 많으니 편하게 지낼 친구는 결국 홍빠나 유영이밖에 없다고. 경하도 유학가고 민수도 유학 준비하고 대원이도 유학 준비하니 나도 그렇게 친하게 지낼 사람이 없다는 말입니다. (...) 서운하고 쓸쓸해 마시고 학교로 오세요. 학교의 문은 넓게 열려 있습니다. (... 그나저나 다들 실명이 나오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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