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World Cup Qualifiers: Korea vs DPRK

베스트 플레이어도, 워스트 플레이어도 없었다.
모두가 어느 정도 적절한 역할을 부여받아 어느 정도 충실히 수행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족할만한 좋은 결과가 나온 것은 아니다.

북한은 예상대로 극수비적인 전략을 선택해서 경기에 임했다.
다섯명의 수비수와 네명의 미드필더, 그리고 정대세의 원톱.
우선적으로 앞뒤로 압축된 수비 진형으로 상대의 공격을 철저하게 저지한 뒤
정대세의 원톱과 두어명의 미드필더들의 빠른 역습만으로 공격을 전개했다.
명목상 북한의 홈경기였음에도 불구하고 승리보다는 무승부를 노리는 전략은
우리 나라가 가장 강력한 상대라는 북한의 계산을 잘 드러내는 형태였다.

반면 해외파 공격진들을 모두 불려들여 경기에 임한 허정무 감독은
지난 동아시아 대회에서의 무승부보다 좋은 결과를 얻으려 노력하는 듯 했지만
아쉽게도 그닥 크게 달라진 결과를 만들어내지는 못한 채 돌아오게 되었다.

조재진을 정점으로 박지성-박주영-설기현이 자리를 바꿔가며 공격한 전반과
조재진 대신 염기훈을 투입하며 박주영의 뒤에 박지성을 배치한 후반에 모두
선수 개개인의 경기력이 아주 실망스러운 수준이라고 보기는 어려웠다.
박지성은 첫 터치가 조금 나빴지만 전체적으로 수비들을 손쉽게 처리했으며
조재진은 최전방에 고립되지 않고 2선에서 뛰어들어가는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염기훈과 설기현의 크로스도 괜찮았고, 박주영은 많은 헤딩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문제는 무엇보다 공격진의 호흡이 잘 맞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열시간이 넘는 비행 이후 며칠 제대로 쉬지도 못한 채 훈련에 임한 해외파는
개인 기량과는 상관 없이 동료들과의 호흡 문제에서 계속 아쉬움을 남겼다.
박지성이 공을 주고 재빨리 뒷공간으로 돌아들어가도 공은 돌아오지 않았고
설기현과 이영표의 크로스는 번번히 조금 길거나 짧아서 골이 되지 못했다.
윙어와 풀백의 유기적인 조합은 없었고, 김두현이 돌아나가도 마찬가지였다.

중앙에서의 공격은 북한의 철저한 틀어막기로 잘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측면에서의 공격으로 경기를 풀어나갔어야 한다고 생각되기도 하지만,
주전 윙어와 풀백이 대부분 해외파로 발 맞출 시간이 부족했다는 걸 생각하면
그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그닥 이상하게 생각되지만은 않는다.
백전노장 이영표와 박지성의 왼쪽도, 오범석과 설기현이 발을 맞춘 오른쪽도,
염기훈이 왼쪽으로 돌아가고 김두현이 오른쪽으로 돌아가도, 마찬가지였다.
두세명씩 달라붙는 수비를 혼자 힘으로 돌파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또한 장거리 비행은 체력을 소모시켜 발을 피치에서 떨어지지 못하게 했다.
숫적 우위를 바탕으로 수비에만 골몰하는 상대를 파해하기 위한 방법에는
역시 세밀한 패스와 많은 활동량을 바탕으로 보다 빠르고 정확한 축구를 하는 것이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공격 쪽에서 기동력을 부여할 수 있는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져 있고
다른 선수들 역시 그닥 활발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것은 공격을 무디게 했다.
아무리 수비가 밀집되어 있어 공간이 없다 해도 언제나 움직여야 하는 것이 축구고,
받은 공을 재빨리 다시 넘기고 또 움직이는 것이 현대 축구의 정석이다.

개인적으로는 해외파의 잦은 차출은 그닥 효율적일 수 없다는 생각도 든다.
그들에게 지워지는 엄청난 체력적 부담은 좋은 경기력을 상당 부분 사라지게 만들고,
누적된 피로는 선수 생명 단축으로 이어져 도리어 효용 가치를 떨어뜨릴 뿐이다.
게다가 국내의 좋은 대체 자원들에 대한 발굴 역시 늦어질 수 밖에 없고
코칭 스태프에게는 이미 검증된 자원으로 안일한 경기 운영을 하게 만든다.
가볍게 승리하고 넘어갈만한 지금 수준의 월드컵 예선 정도에서는
좀 더 폭넓은 선수 기용을 통해 다른 대안을 마련해 보는 것은 어떨까 싶다.
물론 어느 정도의 구심점은 반드시 존재해야겠지만 말이다.

전체적으로 공격을 제대로 풀지 못한 상황에서도 실망스럽기만 한 건 아니었다.
최전방 스트라이커의 밑에 2선 포워드 혹은 공격형 미드필더를 놓고 양 윙어를 세워
사실상 네명의 포워드를 경기 내내 가동했던 경기에서 무득점이라는 사실은 슬프지만,
김남일이 불의의 부상으로 교체된 뒤에도 잘 버텨준 조원희-김두현 라인과
실점하지 않은 이영표-이정수-강민수-오범석의 포백은 실망스럽지는 않았다.
다소간 실수가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결정적인 오점을 남기지는 않았기에
남은 예선에서도 종종 기대해 볼 수 있을만한 조합이 아닐까 생각된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펼쳐진 북한과의 경기에서 만족스런 결과를 얻어내지 못했다.
지난 동아시아 대회에서 해외파 핑계를 대며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었던 허정무 감독은
돌아온 조재진과 박주영에 모두 합류한 해외파를 얻고도 공격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물론 북한처럼 온전히 수비만을 위한 전략을 택하는 팀을 상대로 승리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중앙과 측면 모두에서 세밀한 패스 플레이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나
조금만 막히면 금새 수비 진영에서 긴 패스를 남발했다는 점이나
선수들이 움직이지 않고 공을 끄는 경향이 많았다는 점들은
어쨌거나 감독이 덜 요구하고 덜 말했다는 사실일 뿐이다.

세계 축구에서 우리 나라의 위치는 참으로 애매모호하다.
아시아의 나라들은 대부분 우리 나라를 상대로 일제히 수비만 하다가 역습할 뿐이고
그 외의 나라들은 우리보다 압도적인 경기력으로 공수 양면에서 경기를 주도한다.
그렇다면 우리 나라는 밀집 수비도 뚫을 줄 알아야 하고 선수비 후역습도 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어느 쪽에서나 효과적인 공격 방법은 있어야만 한다.

오늘의 선수 조합은 개인적으로 상당히 기대가 된다.
공격진도 수비진도, 앞으로 월드컵까지 전성기를 누릴 선수들이니까.
그 선수들을 가지고 더 좋은 전략, 전술을 만드는 건 코칭 스태프의 몫이다.

by Lucypel | 2008/03/26 23:09 | Review: FC Korea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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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홍돈 at 2008/03/27 02:02
이제 아마 상황이 바뀔 겁니다. 바레인이나 카타르나...우리가 한 수 아래로 무시해왔던 상대들이
지금 엄청난 발전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오늘 일본과 바레인 경기를 보고 깨달았습니다. 우리나라도
좀 더 내부적으로 좀 더 연구하고 많이 생각하는 지도자와 선수들이 나오지 않으면 (뭐 저치들은 거의
귀화선수들이니까요) 안될 것 같더군요.

아무튼 오늘 한국과 북한전은 밀집수비를 효과적으로 허무는 포워드진의 형태를 제시하긴 했지만
실질적으로 전혀 제기능을 못 했으니 그 실효성에 있어선 조금 의문입니다. 크로스를 올리고, 패스를
주고, 슈팅을 하는 것과는 전혀 별개로 볼들 하나하나가 너무나도 가벼운 것은 아닌지........

마지막으로 강민수의 수비는 꽤 괜찮았습니다. 정대세 선수의 약점을 잘 캐치했더군요. 정대세선수는
집요하게 힘으로 수비하는 것보다 앞에서 볼을 컷해주는 한 발 앞선 수비형태에 상당한 약점을 지니고 있더군요; 지난 번 가와사키 경기를 보러갔을 때 빗셀 고베의 카와모토라는 수비수가 오늘 강민수 선수와 비슷한 수비법을 택해서 정대세선수를 꽁꽁 묶었었는데 무척 인상 깊었습니다.

홍영조나 문인국은 뭐 여전하더군요. 특히 홍영조...역시 하위이긴 해도 유럽리그에서 왜 뛰는 지
실력이 증명해주더군요. 허허...

P.s.
오늘 북한 GK는 제가 지금까지 본 북한 골리 중 가장 괜찮은 느낌이었다능...ㅎㄷ
Commented by Lucypel at 2008/03/27 08:31
홍돈: 다른 아시아권 팀들의 성장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요. 이라크의 아시안컵 우승도 그렇지 않겠습니까. 이번 포워드진의 문제는, 서로 호흡을 맞추기 어려웠다는 점이겠지요. 짧은 패스를 주고 돌아나가는 움직임은 개인적으로 밀집 수비를 뚫을 때 상당히 효과적이라고 보는데, 그 패스가 약간씩 어긋나면서 실패한 경우가 많더군요. 강민수야, 머리 쓰는 수비수로는 상당한 수준이라고 보입니다만, 그게 가끔 실수가 되어서 욕을 많이 먹는 경우지요. (먼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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