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EPL 32R: ManU vs Ast

완벽했다.
아름답고도, 강인했다.
이것이 바로, 유나이티드의 축구다.

개인적으로는 주중에 있을 로마 원정에 대비해 주축 선수들이 쉴 것으로 예상했다.
긱스와 호날두는 대표팀 경기를 쉬었으니 나올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루니나 캐릭, 퍼디낸드 등의 잉글랜드 대표들은 아무래도 쉴 것으로 생각했다.
또한 긱스나 호날두, 스콜스 등도 선발 출장하더라도 후반에는 휴식을 취하며
남은 일정에 대한 준비와 여러 선수들의 경기력 유지에 힘쓸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유나이티드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승리, 그리고 그 다음의 승리다.
비록 다음 로마 원정의 승리가 커다란 의미를 갖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번 경기의 승리가 의미를 갖지 않는 것은 아니다.
누구보다 오랜 세월 한 클럽의 감독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서도
누구보다 커다란 승리에의 갈증을 지닌 퍼거슨 감독은 여지없었다.
이번 시즌 최종전까지 이끌어나갈 그야말로 베스트 일레븐이 출장했고,
그 결과는 완벽했다.

무엇보다 시즌 말미에 접어들면서 경기력을 회복한 긱스와 스콜스, 노장 듀오는 대단했다.
각기 부상과 노화로 전성기만 못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많은 실망을 안겼던 이들은
지난 리버풀전을 통해 각성한 듯 과거의 환상적인 모습으로 돌아온 듯한 느낌이었다.
긱스의 느려진 발이야 더이상 어쩔 수 없는 세월의 힘이기에 포기한다고 해도
그 우아한 곡선의 크로스와 수비를 농락하는 발재간은 여전히 남아있었고,
경기 내내 유나이티드의 공격을 진두지휘한 스콜스의 패스는 현란할 정도였다.

특히 전반에는 캐릭과, 후반 중반부터는 안데르송과 발을 맞춘 스콜스의 활약은
막강 화력을 뽐낸 젊은 공격진과 철벽의 수비를 자랑한 포백 사이에서도 돋보였다.
센스 있는 수비와 후방에서의 긴 패스가 장기인 캐릭과 발을 맞추는 동안에는
적극적으로 전진하여 투톱의 바로 밑에 위치한 채 공격 전개에 힘을 썼고,
넓은 활동량으로 공수를 가리지 않고 피치 위를 누비는 안데르송과 함께일 때는
뒤쪽에서 정적인 움직임으로 중심을 잡으며 경기를 지배하는 듯 했다.
호날두와 루니, 테베즈에게 이어지는 전진 패스들의 절반 이상은 스콜스의 것이었고
상대의 역습을 끊어내는 것도 역시 동료와 함께한 스콜스의 몫으로 보일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화려하게 빛난 별은 아무래도 호날두와 루니였다.
그야말로 센스 넘치는 슈팅으로 선제골을 만들며 골 기록을 이어간 호날두는
역습 상황에서 완벽에 가까운 크로스로 테베즈의 두번째 골을 도왔고
후반에는 연이어 뒷꿈치로 루니에게 패스를 넣어주며 도움을 추가했다.
오른쪽과 중앙, 때때로 왼쪽에서 활약한 호날두는 쉴새없이 공격했고
달콤한 휴식의 힘이 얼마나 매력적인 것인지 다시한번 느끼고 포효했다.
루니 역시 호날두, 테베즈와의 환상적인 호흡을 자랑하며 공격에 임했고,
주로 왼쪽 측면에서 날카로운 모습을 보이며 후반에만 두골을 몰아넣었다.
사실 최근의 결정력 부족만 아니었다면 네골, 다섯골은 넣을 수 있었던 루니였지만
어쨌든 통산 50골에 이어 51골도 달성해내며 자신이 완벽한 포워드임을 과시했다.

유나이티드가 자랑하는 노장 듀오와 R-R 콤비에 대해서 한참 자랑했지만,
사실 이번 경기에서는 굳이 그들뿐만 아니더라도 모두가 완벽한 경기를 보였다.
테베즈는 오랫만의 선발 출장에서도 여전히 3선까지 내려오는 엄청난 활동량과
섬세한 볼 터치를 통한 키핑과 동료와의 호흡을 바탕으로 한 패스를 보여주었다.
특히 루니와 만들어낸 문전에서의 장면들은 그대로 박물관에 전시해도 될 수준이었다.
스콜스와 함께한 캐릭과 안데르송 역시 자기 자리에서 완벽한 역할을 수행했고,
선발 출장한 에브라-비디치-퍼디낸드-브라운의 포백 라인과 더불어
후반 사용된 오셔-비디치-브라운-하그리브스의 포백 라인도 충실했다.

특히 에쉴리 영과 아그본라허, 헤어우드와 카류를 모두 투입한 빌라의 공격진을,
비록 카류의 부상으로 션 말러니로 조기 교체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네명의 공격진을,
철저하게 봉쇄해낸 주전 포백 라인의 막강한 수비력은 정말 대단할 따름이다.
이미 세계 최정상급 왼쪽 풀백으로 성장한 에브라 앞에 아그본라허는 보이지도 않았고
네빌의 공백을 전혀 느낄 수 없게 채우고 있는 브라운은 영을 시종일관 제압해냈다.
카류와 헤어우드의 피지컬은 강인했지만 퍼디낸드와 비디치는 더 강인했고
말러니의 재간은 불안하던 첼시에게는 통했어도 굳건한 유나이티드에게는 안 통했다.
비록 퍼디낸드와 에브라가 교체되어 나간 이후에는 잠시 흔들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성실함이 돋보이는 하그리브스와 이미 신이 되어버린 오셔의 앞에 불가능은 없었다.

빌라와 마틴 오닐 감독에게는 미안한 말이 되겠지만,
오늘의 유나이티드를 이기는 것은 그들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완벽한 공격력과 완벽한 수비력을 갖춘 팀을 상대하는 것은 무척 힘들고,
그에 준하는 경기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이미 기세를 탔다면 이길 수 없다.
빌라는 승리하고자 하는 열망은 있었던 것처럼 보였지만 능력이 부족했고
무엇보다 최근의 기세에서 상당한 거리가 느껴지고 있었다.

이제 프리미어십에서 남은 경기는 여섯 경기,
챔피언스리그에서 남은 경기는 다섯 경기가 되었다.
열한 경기라면 데니스 로의 기록에 도전하는 호날두에게도 가능성이 남아있고,
다시금 더블을 노리는 퍼거슨 감독에게도 충분한 가능성이 남아있다.
시즌 내내 해왔던 일을 열한번만 반복하면 달콤한 미래가 기다린다.

정확히 열한번만 더 이기면 된다.
그리고 이날의 완벽함은 그 열한번이 꿈이 아님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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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ypel | 2008/03/30 14:20 | Review: EPL/FA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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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바죠 at 2008/03/30 15:55
잘 읽고 갑니다.
호날두, 정말 대단해요!
Commented by 아문 at 2008/03/30 16:47
이제 시즌 경기도 이제 열한번만 남았군요
앞으로도 유나이티드가 계속 이런 경기력만을 보여주길 기대합니다
Commented by 아이리스 at 2008/03/30 17:12
아스톤 빌라...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어제처럼 노도같이 밀려오는 맨유의 기세를 받아내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Commented by Lucypel at 2008/03/30 17:25
바죠: 정말 대단해요!

아문: 열한번만 이기면 됩니다. (웃음)

아이리스: 어제는 완벽했으니까요. :)
Commented by GrayFlower at 2008/03/30 19:09
이견이 있을 수 없을만큼 어제의 맨유는 강력하더군요. 최고였습니다~b (더불어 호날두 선수도요)
Commented by Lucypel at 2008/03/30 20:05
GrayFlower: 딱 이만큼만 시즌 끝까지 해주면 좋을텐데요. (...)
Commented by 엑시아 at 2008/03/30 23:58
올해는 더블, 내년에는 트레블 10주년을 맞아 한 번 더 트레블 달성.
이게 맨유팬인 저의 바램입니다. :-)

어제 경기력을 매 경기 보여준다면 불가능하진 않을텐데.. 그만큼 정말 최고의 경기였고,
멋졌고, 전율이 일었던 경기였습니다.
Commented by Lucypel at 2008/03/31 02:01
엑시아: 올해는 더블, 내년에는 쿼드레블입니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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