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the ohter Boleyn girl, 천일의 스캔들

어쩌면 우리 나라의 영화 제목 번역 센스는 이다지도 한심하기 짝이 없을까.
Anne Boleyn과 Mary Boleyn의 사랑과 야망, 갈등과 인생이 담긴 영화가
한낱 주전부리 땅콩만도 못한 스캔들이라는 단어로 치장되어 버리면서
인물도 갈등도 역사도 모두 흐트러지며 집중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물론 영화 자체가 가지는 한계도 분명히 존재했다.
역사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 작품이 대부분 그러하듯
잘해봐야 이미 알려진 사실의 재구성이 되고 못하면 실패작이 되는 상황은
이 영화에서도 어김없이 날카로운 잣대가 되어 평가를 깎아먹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단점은 시각을 바꾼다면 나름의 장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너무나 유명한 헨리 8세의 이야기는 잘 알려진 역사적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와 관련된 개개인의 심리적인 부분들은 후세의 우리로서는 절대 알 수 없는 일이고,
특히 왕이었던 헨리 자신을 제외한 주변 인물들, 그 중에서도 처형된 인물들의 경우
대부분 부정적인 특징만이 과장되어 전해질 뿐 인간적인 매력은 알 수 없었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앤과 메리 자매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그린 점은,
물론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예술적 허구의 일환으로,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으면서도 순수한 사랑을 했던 메리와
사랑과 야망 사이에서 갈등하다 목숨을 건 도박을 감행한 앤의 모습은
그들의 마음 속에서 일어난 인간적인 고민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스칼렛 요한슨과 나탈리 포트먼의 아름다운 모습이 함께한 것은
그런 인간적인 매력에 커다란 보너스와 같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도리어 아쉬웠던 점은 역사적인 사실의 비틀림보다 다소 성급한 영화의 전개였다.
물론 러닝타임을 고려해야만 하는 영화의 특징은 결코 무시할만한 것이 아니었지만
인물과 인물 사이의 감정과 개인의 심리적인 갈등을 주로 다루고자 했던 것이라면
그러한 내적 표현을 좀 더 섬세하게 할 수 있도록 연기의 시간을 늘려야 했을 듯 하다.
배우들의 연기, 특히 나탈리 포트먼의 앤은 폭발하는 감정이 잘 드러나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그들의 심리 변화가 밖으로 표출되는 흐름이 잘 와 닿기에는 부족했다.
조금 더 천천히 시간을 들였다면, 하는 생각이 마지막 아쉬움이라는 느낌.

밝은 이미지의 메리와 어두운 이미지의 앤이 사실상 영화를 제압하고 있는 와중에
또 한명의 중요한 인물이었던 헨리 8세는 조금쯤 묻혀버린 느낌을 주기도 했다.
에릭 바나가 연기한 헨리는 다소 인간적이고 차분한 느낌을 주고 있어서
얼마전 국내에도 방영된 "튜더스"의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의 헨리와는 꽤 달랐다.
게다가 작품 속에서의 비중도 조나단 리스 마이어스에 비해 상당히 작아서
에릭 바나만의 헨리 8세를 보여주기에는 조금 부족함이 있지 않았나 싶다.

복종하고, 지배한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가장 현명한 여성들이 선택했던 이 방법을
자신은 원하지 않았으면서도 어느샌가 복종함으로써 지배했던 메리와
끝내 지배하기 위해서 애를 쓰다 결국 무너져버리고 만 앤의 삶에서 읽을 수 있는 영화.
스칼렛 요한슨의 아름다움에 눈이 멀고 나탈리 포트먼의 연기에 귀가 머는 영화.
승자에 의해서 쓰여진 역사를 비틀어 보는 재미를 생각하게 만든 영화.
여러 모로, 개인적으로는 충분히 즐거웠던 영화였다.


덧. 라이프로그 검색이 되게 되면 수정하겠지만, 점수는 별 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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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ypel | 2008/04/07 23:05 | Review: Movie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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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별빛수정 at 2008/04/07 23:09
아...이거 보고 싶었는데...
Commented by Lucypel at 2008/04/08 09:10
별빛수정: 아직 학교 앞에서 하고 있어요. 꼭 보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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