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UCL Semifinal: Liv vs Che

퍼거슨 감독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불운의 뒤에는 그랜트의 천운이 있었다.

전반은 드록바의 선제골로 온전히 첼시의 분위기였고,
후반은 토레스의 동점골로 온전히 리버풀의 분위기였다.
앤필드에서 선발 자리를 내어주어야만 했던 칼루와 베나윤은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선발 출장하며 맹활약하여 자신의 가치를 보였고,
마스체라노-알론소-제라드 조합과 마케렐레-발락-램파드 조합의 맞대결과
페르난도 토레스와 디디에 드록바의 맞대결은 팀의 분위기에 정확히 편승했다.

그 와중에 먼저 불운을 맞이한 것은 역시 리버풀의 베니테즈 감독 쪽이었다.
전반이 절반도 지나가기 전에 스크르텔이 부상으로 더이상 경기를 진행하지 못하자
어쩔 수 없이 젊고 빠르고 강인한 스크르텔 대신 늙고 느린 히피아를 투입해야 했던 것이다.
물론 히피아도 드록바를 상대할만큼의 강인한 피지컬을 갖고 있기는 했지만
모든 시간이 흐르고 난 뒤의 결과를 놓고 본다면, 이것은 분명 불운이었다.

20분경에 스크르텔이 히피아로 교체되고 30분경에 드록바의 선제골이 터졌다.
공격을 위해 선택했던 아르벨로아와 리세의 풀백은 수비에서 문제를 드러냈고,
일단 선제골을 넣고 난 다음의 첼시는 당연하게도 그들이 가장 잘하는 잠그기를 선택했다.
다시 그렇게 30분쯤이 흐른 뒤에 베나윤은 첼시의 모든 수비진을 자신에게 집중시켰고
절묘하게 빠져들어간 공은 토레스의 발을 떠나 다시 절묘하게 골문을 갈랐다.
그리고 남은 30여분은 리버풀과 첼시의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

결국 홈이기에 유리한 첼시와 따라잡았기에 유리한 리버풀은 연장을 맞이했고,
연장 시작하자마자 불운을 접해야만 했던 것은 마치 그랜트 감독과 첼시인 듯 했다.
코너킥 상황에서 흘러나온 공을 지체없이 강력한 슈팅으로 연결한 에시앙은
세레머니까지 끝낸 상황에서 나온 오프사이드 판정에 불만을 표할 수 밖에 없었다.
분명 논쟁의 여지가 있는 장면이기는 했지만, 공을 건드리지 않아도 경기에 영향을 준다면,
예를 들어 골문 앞에서 위치해 골키퍼의 시야나 움직임을 제한할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
심판의 재량에 따라 오프사이드를 선언할 수 있는 최근의 동향을 생각한다면
주심과 부심이 그러한 판단을 내린 것이 어떤 사고 과정의 결과인지는 알 수 있다.

게다가 첼시의 이 불운은 불운을 가장한 행운이었음이 곧바로 드러났다.
역시 페널티 박스 안에서의 혼전 상황에서 히피아는 발을 쭉 뻗어 공을 걷어내려 했지만
반박자 늦은 노장의 느린 반사 신경은 공 대신 발락의 발을 걷어내고 마는 상황이 된 것이다.
가차없이 내려진 페널티킥과 깔끔한 성공 후에 하늘을 향해 눈물을 바친 램파드의 모습은
이번만큼은 고인이 된 팻 램파드의 손길이 스탬포드 브릿지를 어루만진 것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연장 전반이 끝나기 직전, 이번에는 아넬카가 리버풀의 수비진을 모두 집중시켰고
반대편에서 뛰어들어오던 드록바에게 정확한 패스를 넣어주며 그야말로 쐐기골을 만들었다.
연장 전반 종료와 함께 스탬포드 브릿지에서 첼시가 3:1로 앞서가는 상황.
상대가 리버풀이 아니었다면, 그 누구라도 거기서 경기는 끝났다고 봐야 했다.
그나마 리버풀이었기에 연장 후반 바벨의 기습적인 중거리 슈팅으로 따라붙었지만
이미 베나윤과 토레스가 교체로 빠지고 제라드마저 지친 상황에서
이스탄불의 기적을 재현하는 것은 정말로 힘든 일이었다.

다분히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스크르텔의 부상이 경기의 판도를 뒤집어 버렸다.
이번 시즌 그야말로 환상적인 경기력을 보여주던 스크르텔의 부상은 수비를 약화시켰고
교체로 들어온 히피아는 치명적인 실수로 실점 장면마다 빌미를 제공하고 말았다.
물론 더 결과론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앤필드 93분 50초의 지긋지긋한 불운 때문이지만,
그것을 오늘에서도 언급한다면 그것은 리세를 두번 죽이는 일에 불과할 따름이다.

이로써 리버풀을 만나기를 바랬던 퍼거슨 감독의 발언은 수포로 돌아갔고
첼시는 홈에서의 무패 기록을 다시 한번 늘려내며 모스크바행 티켓을 예약했다.
지장도 덕장도 용장도 이길 수 없다는 운장 그랜트 감독은 취임 첫 시즌에서
"special one" 무링요도 해내지 못했던 챔피언스리그 결승 진출을 성공해냈다.

과연 피치 위에서 가장 흥미진진하다는 펠레 스코어로 결승에 진출한 첼시가
프리미어십과 챔피언스리그의 우승을 동시에 겨루고 있는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모스크바에서 그 커다란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릴 수 있을 것인가.
그랜트의 천운은 과연 모스크바에서도 계속될 것인가.

이제 시즌은 유나이티드와 첼시의 대결로 최종 국면을 맞이했다.


덧.
왜 베나윤을 지금까지 선발로 쓰지 않았던 것이냐, 라던가
왜 말루다는 시즌 내내 하는 일이 아무 것도 없느냐, 라던가
왜 셰브첸코는 경기 종료 직전에만 투입되는 것이냐, 라던가
하는 선수 개개인에 관련된 언급들은 오늘 하나도 필요가 없다.
환상적인 득점을 해낸 드록바와 토레스, 바벨을 모두 차치하고라도
오늘 경기에서 팀이 아닌 선수 개인이 빛을 받을 수 있는 선수가 있다면
그건 오로지 램파드 뿐이다.

덧2.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오늘 터진 다섯골이 모두 한 골대에만 집중되었다는 사실이다.
첼시는 전반과 연장 전반에, 리버풀은 후반과 연장 후반에만 골을 넣었는데
전후반마다 진영을 바꾼다는 점을 생각하면 모두 한 골대에만 맹폭이 이루어졌다.

덧3.
오늘에서야 다시금 느끼는 바는
나는 개인적으로 드록바도, 발락도, 마케렐레도, 카르발료도, 테리도, 체흐도, 정말 싫다.
실력에 대한 시샘이나 격하도 아니고 선수 개개인의 인격에 대한 실망도 없었는데
그들의 얼굴을 보고 있으면 가슴 깊숙히부터 뭔가 모를 기분 나쁨이 올라온다.
특히 페널티킥을 얻어낸 발락의 포효는 정말 구역질이 났다.
그리고 이건 그저 개인적인 감정일 뿐.

by Lucypel | 2008/05/01 06:53 | Review: UCL/UEFA | 트랙백 | 덧글(12)

트랙백 주소 : http://FSHE.egloos.com/tb/1660912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glasscage at 2008/05/01 07:08
모스크바에서 만납시다 !
Commented by 아문 at 2008/05/01 07:12
SB에서 당한 수모에 대한 복수의 기회로 받아들이렵니다.
Commented by specialone at 2008/05/01 08:25
잘 보고 갑니다. 확실히 맨유 입장에서는 첼시가 더 어렵겠죠?
근데 다른 선수들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데 체흐도 그렇게 싫으신가요? ^.^
Commented by ⓧ프리뮬라 at 2008/05/01 09:05
모스크바도 첼시 홈분위기 날듯한데 이번엔 눌러줘야죠
어디 이번에도 k-1분위기 내나 기대하고 있습니다-_-
Commented by Lucypel at 2008/05/01 09:56
glasscage: 모스크바에서 봅시다! 이번에는 양보 없습니다! :)

아문: 지난 시즌 FA컵도 있지요. :)

specialone: 음, 개인적으로 맨유가 첼시를 이기지 못했을 때 그 이유는 체흐 때문이라고 봅니다. 공격과 수비 모두 좋지만 그건 맨유의 능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보거든요. 근데 신들린 날의 체흐는 그냥 사기 유닛이라 좀 그렇죠. 아니, 근데 이건 싫어하는 이유라기보다는 그냥 그렇다는 거고, 왜 싫은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ㅠㅠ

프리뮬라: 드록바의 니킥에 데쿠의 하이킥까지, 요즘 맨유가 좀 맞고 다니죠. (한숨)
Commented by ViceRoy at 2008/05/01 10:18
지장도 용장도 덕장도 이기지 못하는 운장 그랜트....

이사람은 도대체 뭐길래 신의 보살핌을 받는 걸까요..[...]

설마 신이 무링요 안티라..[그만]
Commented by GrayFlower at 2008/05/01 11:53
신이 무링요 안티라..(완전 공감^^ㅋ) 어쨌든 첼시와 맨유의 더블을 향한 경쟁이 앞으로 볼만하겠습니다.^^
Commented by Lucypel at 2008/05/01 12:44
ViceRoy: 그러게요, 안틴가 봅니다. (먼산)

GrayFlower: 절대 양보는 없답니다. 훗.
Commented by FrontierJ at 2008/05/01 22:51
만액 이렇게 되어서 그렌트가 더블을 달성하면?
무링요는 과연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지네요.
Commented by Lucypel at 2008/05/02 09:02
FrontierJ: 그랜트가 마구 우쭐대면 정말 쿨하게 그래 잘했다 해주지 않을까요. 왠지 무링요라면 신경도 안 쓸것 같아요. ㄲㄲ
Commented by 물빛바람 at 2008/05/02 16:17
마케렐레-발락-램파드라고 쓰셨는데 마켈이 아니라 에시앙이었습니다 ^^;
Commented by Lucypel at 2008/05/02 23:10
물빛바람: 에시앙은 오른쪽 풀백으로 출장하지 않았나요? 포백 라인이 콜-테리-카르발료-에시앙이었던 걸로 기억하고, 미들에 마케렐레-발락-램파드가 나온 걸로 기억하는데요;;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