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Speed Racer

1.
레이싱이라는 건 나에게 꽤나 날카롭게 파고드는 약점과 같은 부분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축구에 빠져있는 것과 비슷한 이유로 나를 끌어당기는 데,
속도라는 원초적인 가치, 그 누구보다 빠르다는 근본적인 경쟁 심리는
강한 승부욕을 가진 사람이라면 절대 그 승리의 맛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든다.

2.
그런 면에서 이 "스피드 레이서"라는 작품은 나에게 대단히 매력적이다.
실사 촬영과 애니메이션의 경계를 절묘하게 넘나드는 휘황찬란한 영상들은
레이싱의 가장 근본적인 매력인 속도감과 현란함을 극대화시키는 것 같다.
그저 고속도로에서 빠른 속도를 내기만 해도 이미 우리의 시야는 좁아지고
제멋대로, 물론 정확히는 과학적으로, 왜곡되어버린 시각 정보들은
그 변화되는 만큼이나 우리에게 속도의 쾌감을 전달하기 마련이다.

3.
워쇼스키 형제의 "대놓고 오덕질"은 이제 정말 차원이 다른 상황이 되었다.
흔히 하는 말로 일본 오덕보다 서양 오덕이 훨씬 무섭다는 말을 했었는데,
워쇼스키 형제는 "공각기동대" 오마쥬인 매트릭스 트릴로지에 이어서
이번에는 대놓고 원작을 밝히고 만든 이 작품을 내놓고 말아버린 것이다.

4.
나는 원작을 이전에 국내 공중파를 통해서 봤던 것으로 기억하지만,
조금 이상하게도 관람 내내 오버랩되었던 것은 "사이버 포뮬러" 시리즈.
분명 원작의 음악일 것으로 추정되는 음악에서 내 귀에 익은 음악을 느꼈고,
두 작품을 모두 봤다면 누구나 느꼈을 X와 나이트 슈마허의 오버랩과
드리프트 장면이나 그림자를 따르는 주행은 진한 향기를 흘리고 있었다.
뭐, 이건 어디까지나 내 가장 소중한 작품이 "사이버 포뮬러"이기 때문일 듯.

5.
다시 레이싱 이야기로 돌아가보자면, 작품 속 갈등 구도는 상당히 뻔하다.
돈과 권력의 중추와 순수하게 승리를 즐기는 레이서간의 갈등이라는 점.
실제로 레이싱 산업이라는 건 엄청나게 자본 집약적인 산업이라서
막대한 돈이 없으면 그 어마어마한 연구 개발비와 유지비에 쳐발리게 된다.
요즘 F-1에서도 페라리나 맥라렌처럼 자본이 있는 회사들만 승승장구하고
얼마전 참전을 포기한 슈퍼 아구리같은 독립팀들은 무너지고 있는 추세는
그만큼 레이싱 산업이 얼마나 자본에 의지하는 산업인지를 보여준다.

6.
따라서, 그만큼 보다 순수한 욕망과 의지만이 레이싱에서는 중요해진다.
돈으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은만큼 돈에 휘둘리지 않아야 하고
더욱 순수한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고 승리를 염원해야 하는 것이다.
마치 권력을 손에 쥘수록 부정부패를 멀리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 나라 자동차 기업들은 이미 꽤 거대해졌음에도
그런 순수한 마음이 없다는 점이 대단히 아쉽울 따름이다.

7.
이 시대의 아방가르드 영화, 라는 표현이 꽤나 잘 어울리는 듯 하다.
실사와 애니메이션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점에서도 꽤나 선구적이고
일본 애니메이션이라는 상당히 마이너한 취향을 적극 드러냈다는 점도 이색적이다.
뻔한 소재를 가지고 자신들이 원하는대로 손대어 멋진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점도,
그러면서도 이런저런 자조와 냉소가 공존하는 뭔지 모를 감정들을 담았다는 점도
이 영화와 워쇼스키 형제를 아방가르드 영화의 중요한 기점으로 삼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8.
뭐, 어쨌든 나는 두시간이 넘도록 엑셀을 밟고 싶게 만들었다는 점에서
더이상 버틸 수 없게 되어버려 무조건 항복이지만. (웃음)



스피드 레이서
에밀 허쉬,매튜 폭스,크리스티나 리치 / 앤디 워쇼스키,래리 워쇼스키
나의 점수 : ★★★★★

by Lucypel | 2008/05/26 10:47 | Review: Movie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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