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Euro 2008: Spain vs Russia

무적함대 아르마다의 유로 2008 항해는 순항으로 시작되었다.
휘청거리는 모습만 보였던 발렌시아의 다비드 비야가 최전방에 나서
스페인 함대의 키를 잡고 첫번째 경기에서 맹활약했다.

좋은 미드필더 자원을 대거 보유한 스페인의 선발 전형은 다소 의외였다.
마르코스 세나와 샤비 에르난데스를 중앙 미드필더로 포진시킨 가운데
좌우 윙어로 다비드 실바와 안드레 이니에스타를 위치시켜 공격에 임한 것이다.
여기에 페르난도 토레스와 다비드 비야의 투톱까지 내세움에 따라
화려한 공격으로 경기를 풀어나가겠다는 의지를 강력히 보여주었다.

하지만 이러한 공격에의 의지는 경기 초반 다소 꺾이고 말았다.
사실상 대인 마크에 가까운, 게다가 강력한 압박까지 더해진 러시아의 수비에
다소 자유롭게 움직이며 풀어나가려는 스페인의 공격은 다소 주춤할 수 밖에 없었고,
짧은 두어번의 패스를 통해 빠르게 파고드는 러시아의 측면 공격에 흔들리며
몇 차례 위협적인 기회마저 내어주고 수비적인 부분에서의 불안함을 노출했다.

스페인의 수비적인 불안함은 오른쪽보다 왼쪽에서 더 많이 드러났다.
오른쪽 풀백인 세르히오 라모스와 센터백 카를로스 푸욜이 포진한 오른쪽은
레알과 바르샤의 두 선수가 서로 호흡을 맞춰가며 그럭저럭 수비할 수 있었지만,
카를로스 마르체나와 후앙 카프데비야가 선 왼쪽은 종종 뚫리고 말았다.
전체적으로 잘 짜여진 형태가 아니라 자유롭고 유연한 형태의 스페인 수비에서
한쪽 측면에 반복해서 뚫린다는 것은 선수간 간격을 위태롭게 하는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야말로 좋은 성적을 거두겠다는 스페인이 그렇게 무너질 정도는 아니었다.
수비 진영에서 넘어온 공을 단숨에 골문 앞까지 옮겨 놓은 토레스가 비야에게 패스하여
전반 20분만에 선제골을 성공시킨 스페인은 금새 정신을 차리고 경기에 임했다.
러시아의 변칙적인 수비와 재빠른 공격에 차츰 익숙해지며 전열을 가다듬었고,
선제골을 넣은만큼 조급해하지 않으며 차분히 수비적으로 위치하여 주도권을 잡은 것이다.
게다가 전반 종료 직전 이니에스타의 패스를 받은 비야가 추가골을 성공시키면서
사실상 전반이 끝나기 전에 경기의 승부를 상당 부분 결정해버리고 말았다.

이후의 경기 흐름은 여유만만하게 자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스페인에게
러시아가 다소 힘겨워 보이더라도 공격을 계속하며 희망을 잃지 않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이미 정신을 차린 스페인의 수비는 러시아에게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아라고네스 감독은 토레스와 이니에스타, 실바를 빼는 여유를 부리며 경기를 마무리지었다.

파브레가스의 패스를 받은 비야가 대회 첫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기량을 뽐냈고,
파블류첸코가 세트피스 상황에서 뒤늦은 만회골을 성공시켰으면,
파브레가스 종료 직전의 득점으로 승리에 일조하기는 했지만,
전반이 끝났을 무렵부터 이미 승패는 결정된 것과 같았다.

비야의 해트트릭에 힘입은 스페인이 러시아를 압도적으로 괴롭히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러시아가 쉽게 포기하고 희망을 잃어버릴 정도의 경기는 아니었다.
대인 마크에 가까운 변칙적인 수비는 스페인의 개인 기량을 상당 부분 제압했고,
재빨리 이어지는 패스와 더 많은 활동량을 바탕으로 한 숫적 우위로 이루어진 공격은
스페인의 수비진에게 꽤나 많은 부담을 더해주며 좋은 기회를 여러 차례 만들어냈다.
카시야스가 아니었다면 한두골 정도 더 득점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러시아였기에
히딩크 감독의 마법적인 능력이 빛을 발하리란 기대도 좀 더 해봐도 괜찮을 것이다.


Match Centre (from EURO 2008 Official Website)
EURO 2008: Fixtures & Results

by Lucypel | 2008/06/11 03:45 | Review: UCL/UEFA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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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GrayFlower at 2008/06/11 12:05
개인적으로는 스페인과 러시아의 조별 토너먼트 통과 정도로 D조를 예상했는데 러시아가 비슷한 방식으로 스페인에게 골을 너무 많이 내줘서 앞으로의 행보도 쉽지 않게 되었습니다.
Commented by Lucypel at 2008/06/11 18:05
흠, 그래도 러시아의 기본적인 전력 자체는 나쁘지 않아 보였어요. 제가 아직 그리스와 스웨덴의 경기를 못본 터라 확신할 순 없지만, 좀 더 가다듬는다면 조별리그는 뚫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홍돈 at 2008/06/11 12:10
경기력 면으로는 스페인과 스웨덴이 올라갈 것 같더군요. 다만 이 대회가 경기력만으로 결정되는
대회는 아니니..흠흠.

러시아는 2002년의 한국과 굉장히 비슷한 스타일로 나온 느낌이었는데 스페인이 너무 잘하는 바람에
원...게다가 수비가 너무 불안정해서 앞으로의 경기에서 그 점을 해결하지 못한다면 힘들 것 같더군요.

아아 암튼 어제 스페인은 우왕국!^^
Commented by Lucypel at 2008/06/11 18:05
경기력만으로 결정되는 대회가 아니라는 건 정말 동감합니다. 운칠기삼이랄까요. 어쨌든 스페인 우왕국. 비야 우왕국. ㄲ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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