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EPL 9R: Che vs Liv by Lucypel

첼시의 기나긴 스탬포드 브릿지에서의 무패 행진에 종지부를 찍은 것은
이번 시즌 오랫만에 찾아온 상승세의 높은 바람을 타고 있는 리버풀이었다.

겨우 지난 시즌에 이적했으면서도 벌써 대체할 수 없는 수준의 선수로 자리잡은
페르난도 토레스의 부상으로 인한 공백은 리버풀에게 상당히 뼈저린 부분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머나먼 런던 원정에 나선 리버풀의 상승세가 크게 꺾이지는 않았다.
이번 시즌 영입한 로비 킨이 슬슬 득점에 성공하면서 팀에 적응하고 있고
여전히 클럽의 상징과도 같은 제라드와 캐러거가 건재한 것이 중요했다.
여기에 최근 좋은 경기력을 이어나가고 있는 카이트와 성공적인 이적인 리에라가
공수 양면에 걸쳐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점 역시 리버풀에게는 든든한 점이었다.

베니테즈 감독은 이러한 리버풀의 상승세를 가능한 한 살려내려 했다.
지난 시즌까지 로테이션 정책에 상당한 애착과 집착을 갖고 있었던 베니테즈 감독은
이번 시즌 들어서 그러한 로테이션 정책을 포기하고 주전을 고정시켰는데,
토레스와 스크르텔이 부상으로 자리를 비운 것을 제외한다면 오늘도 같았다.
레이나 골키퍼 앞에는 돌아온 아게르가 캐러거와 함께 센터백으로 포진했고
좌우 측면 조합으로 아우렐리우-레이라, 아르벨로아-카이트가 자리잡았다.
마스체라노-알론소가 중원을 지배하는 동안 제라드가 킨과 함께 전진 배치되어
사실상 투톱과 같은 위치에서 활동했다는 점은 다소 특기할만한 장면이었다.

반면 스콜라리 감독의 첼시는 그 수많은 부상자에도 불구하고
가히 살인적인 더블 스쿼드의 위력으로 그 공백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드록바와 조 콜의 빈 자리는 아넬카와 칼루, 말루다의 공격진으로 메웠고,
에시앙과 발락의 빈 자리는 데쿠와 미켈이 나서며 공수 양면에 걸쳐 틈이 없었다.
에실리 콜과 카르발료, 그리고 체흐가 돌아온 수비진은 원래 주전과 다름 없었다.
리버풀이 두명의 미드필더를 3선에 세우며 다소 수비적인 4-3-3 전형이었다면
미켈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세운 첼시는 보다 공격적인 4-3-3 전형으로 보였다.

그리고 경기는 공격적인 전형을 선택한 첼시가 보다 높은 점유율을 가져갔지만
상당히 뜬금없는 상황에서의 선제골을 가져간 리버풀이 보다 효율적으로 경기했다.
카이트와 리에라를 상당히 수비적인 위치에서 움직이도록 주문한 베니테즈 감독은
공을 뺏는 순간부터 제라드를 중심으로 한 역습을 날카롭게 시도하게 했는데,
이러한 리버풀의 선수비 전략은 마스체라노를 중심으로 한 중원 장악이 성공하면서
첼시보다 더 날카로운 공격 장면을 많이 만드는 전략적 성공으로 이어졌다.

특히 전반 10분만에 알론소가 터트린 선제골은 꽤나 의외의 상황이었는데,
드로인 상황에서 흘러나온 공을 알론소가 왼발 슈팅으로 연결한 것을
보싱와의 몸에 맞고 방향이 바뀌어버린 것을 체흐가 따라가지 못한 것이다.
언제나 환상적인 선방으로 첼시의 골문을 지키던 체흐를 완전히 속인 것은
상대편의 멋진 슈팅이 아니라 팀동료의 몸에 스친 불운이었다.

다소 이른 시간에 터져나온 선제골은 경기의 흐름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서둘러 동점골을 터트리고 경기를 승리로 이끌어야만 했던 첼시는
보다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서려 풀백들을 오버래핑시키면서 미드필더들이 달라들었고,
여유가 생긴 리버풀은 미드필더와 수비수 사이의 간격을 더욱 좁히며 단단히 지켰고
간간히 터져나오는 소수 공격진에 의한 역습으로 날카롭게 첼시 골문을 노렸다.

그리고 너무나 두터워 흠집조차 나지 않을 것 같았던 첼시의 스쿼드가
드디어 부상으로 인한 약점을 노출시키며 리버풀에 의해서 공략당하기 시작했다.
부동의 스트라이커인 드록바가 부상으로 계속 자리를 비우고 있는 와중에
공격진에서 가장 재기 넘치고 활기 찬 조 콜 역시 공백을 만들고 있는 것은
골 넣는 것만 빼고는 모두 잘하는 아넬카에게 골까지 넣기를 바라게 만들었고
칼루와 말루다 같은 포워드들은 아직도 어린 티를 벗지 못하고 존재감이 부족했다.
물론 램파드와 데쿠와 같은 막강한 득점력의 미드필더들이 뒤를 받치고 있었기 때문에
극도로 얇아진 공격진의 득점력이 문제로 보이지 않았던 것이 첼시의 강점이었지만,
리그 최고 수준의 중원 장악력을 보여준 리버풀의 미드필더들에게 중앙을 빼앗기면서
램파드와 데쿠가 다른 경기와 같이 적극적으로 공격에 나서지 못한 것이 치명적이었다.

즉, 첼시에는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가 없었다.
전반 초중반과 후반 막판에야 공을 잡고 활약하는 듯 했던 아넬카와
역시 후반 중반이 지나면서부터야 왼쪽 측면에서 눈에 띄기 시작한 데쿠.
말루다는 아예 없는 편이 팀에 도움이 되는 수준이었고 칼루도 결정력이 부족했다.
그나마 에실리 콜과 보싱와가 적극적으로 오버래핑하여 공격에 가담해 주었고
램파드가 중원을 누비며 어떻게든 공격을 풀어보려고 노력하기는 했지만
베니테즈 감독은 그러한 첼시의 노력을 무위로 돌리기에 충분한 능력이 있었다.

리에라와 카이트의 적극적인 수비 가담이 바로 첼시를 무력화시키는 핵심이었다.
왠만한 풀백 이상의 수비력을 보여주는 카이트의 수비 가담이야 두말할 나위도 없었지만
리에라를 왼쪽 측면 공격 뿐만 아니라 수비 진영에도 깊숙히 내려오도록 요구한 것,
게다가 중앙으로도 계속 수비적으로 가담할 것을 요구한 것은 대단히 인상적이었고,
대단히 공격적인 풀백인 보싱와에게 수비 부담을 강요하기 위해 왼쪽 공격을 시도한 것도
리에라에게 다소 과한 주문을 한 것이 아닐까 싶었지만 분명히 효과적인 선택이었다.
알론소가 다소 오락가락한 경기력으로 몇번의 실수를 범한 것이 치명적일 수 있었는데,
리에라와 카이트의 적극적인 수비 가담과 마스체라노의 원숙한 기량이 그것을 막았다.

후반 들어서는 첼시의 공세가 더욱 거세졌고, 리버풀은 더욱 잘 막아내었다.
풀백들의 오버래핑과 미드필더들의 공격 가담에 테리까지 오버래핑을 시키던 첼시는
후반 58분 칼루와 말루다를 빼고 벨리티와 디 산토를 투입하며 더욱 공세를 취했다.
수비형 미드필더로 역할을 바꾼 벨레티는 보싱와의 오버래핑 뒷공간을 잘 메워주면서
동시에 스스로도 적극적인 공격 가담으로 측면과 중앙에서의 공격 숫자를 늘렸고,
디 산토는 그 압도적인 신장을 바탕으로 수없이 많은 공중볼을 따내주었다.
여기에 리버풀은 후반 60분 로비 킨 대신 바벨을 투입하며 역습을 강화했고
그와 함께 제라드와 윙어들을 보다 수비적인 위치로 내림으로써 수비를 단단히 했다.

그리고 이제는 리버풀의 수비진들이 빛을 발했다.
경기 내내 쓸모없는 선수였던 말루다의 빈 자리를 메꾼 왼쪽 풀백 에실리 콜과
그 뒤를 받치며 측면으로 자리를 옮겨 공격을 한 것은 중앙의 데쿠였고,
보싱와와 벨레티의 오른쪽 측면 역시 쉴새없이 리버풀을 괴롭혔다.
하지만 캐러거와 아게르는 몸을 날리는 수비를 계속해서 보여주면서
디 산토가 자유롭게 공을 떨궈줄 수 없도록 최선을 다해 방해했고,
또한 수없이 많은 장면에서 첼시의 슈팅을 온몸을 던져 막아내었다.
특히 후반 67분 오른쪽에서 날아든 크로스를 데쿠가 받아 완벽한 기회를 만든 순간
어디선가 날아들어 데쿠의 슈팅을 막아낸 것은 다름 아니라 리버풀의 캐러거였다.

후반 60분 환상적인 알론소의 프리킥이 체흐를 완벽하게 속인채 골 포스트를 맞췄고,
후반 74분 오늘 경기에서 첼시에게 가장 좋았던 기회가 콜의 발을 떠나며 밖으로 나갔다.
리버풀과 첼시는 첼시의 일방적인 공세 속에 날카로움을 잃지 않은 리버풀의 역습이 더해진
그야말로 역사적인 무패 행진의 연장과 종료 사이에서 팽팽한 줄다리기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결국 보싱와 대신 싱클레어를 투입해야만 할 정도로 포워드가 부족했던 첼시는
그나마 헤딩을 따내던 디 산토를 막기 위해 리에라 대신 투입된 히피아의 높이에 무릎꿇고
최후의 순간에 세트피스라도 얻어내어 동점을 만들 수 있다는 희망마저 포기해야 했다.

부상으로 얇아진 첼시의 스쿼드가 가진 단 하나의 약점, 포워드들의 빈곤한 득점력은
막강한 화력의 미드필더들을 제압함으로써 심각한 문제로 드러날 수 있다는 점을
정확히 간파하고 강력한 중원 장악으로 경기를 승리로 이끈 리버풀의 베니테즈 감독.
리에라와 카이트의 효과적인 수비 가담과 마스체라노와 캐러거의 환상적인 수준의 수비력.
어쨌거나 결승골을 만들어낸 알론소와 존재감을 드러낸 제라드, 돌아온 아게르의 조합이
베니테즈 감독의 전략적인 판단을 효과적으로 피치 위에 드러내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로써 정말 오랜 기간 끊어지지 않고 이어졌던 스탬포드 브릿지에서의 무패 기록은
근 몇년간 정말 지겹도록 붙어왔던 리버풀에 의해서 끝끝내 끊어지고 말았고,
나란히 승점 20점의 무패 기록을 이어가던 두 클럽의 순위는 정확히 1위와 2위로 갈렸다.
프리미어리그가 시작된 이래 명문의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뛰쳐나가지 못했던 리버풀이
드디어 첼시와 아스날과 맨유를 누르고, 그리고 헐 시티를 누르고, 1위로 나선 이번 라운드는
여러 모로 프리미어십의 역사에 기록될만한 중요한 경기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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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첼시의 리그 홈경기 86연속 무패행진을 깬 리버풀 2008/10/27 11:55 #

    스탬포드 브리지 스타디움에서 열린 08-09 EPL 9라운드 첼시:리버풀전에서 리버풀이 마침내 일을 저질렀습니다. 싸비 알론소의 결승골에 힘입어 2004년 2월 이후 이어진 첼시의 리그 홈경기 86연속 무패행진을 깨고 단독 선두로 올라갔네요! 주전 스트라이커 페르난도 토레스의 공백을 딛고 값진 승리를 따낸 리버풀, 슬로우 스타터의 오명을 완전히 벗어버린듯 합니다. 이번 시즌에는 과연 우승할 수 있을까요?... more

덧글

  • specialone 2008/10/27 04:04 # 답글

    리버풀의 조직력이 뛰어났고, 첼시는 이른 실점의 부담감을 느끼며 경기하여 꼬인 듯 합니다.
    어차피 깨질 기록 빨리 깨져버리는 것이 좋지만, 그 상대가 리버풀이라는게 안타깝네요.
    첼시의 패인은 그래도 리버풀이 잘해서가 아닌, 아넬카와 말루다가 못한 것이 아닐까 하구요.
  • Lucypel 2008/10/27 11:20 #

    솔직히 말루다는 진짜 너무 못하더군요. 그래도 어떻게든 아넬카는 좀 변명이라도 해주고 싶은데, 말루다는 그러기도 싫습니다. (...)
  • 비밥 2008/10/27 04:30 # 답글

    갠적인 바램으론 맨유가 그 기록을 깨주길 바랬는데 조금 아쉽긴 하네요. 첼시 입장에선 앞으로가 정말 중요할듯 오랜기간 쌓아온 대기록이기에 그 기록이 깨졌을때 오는 충격도 상당할거 같아요.
  • Lucypel 2008/10/27 11:21 #

    뭐, 스콜라리 감독의 지휘력이라면 별 문제없이 금방 다시 무패 기록에 도전하겠죠. 사실 그게 더 무섭기는 하지만. (...)
  • chelsea 2008/10/27 06:56 # 답글

    헐... 첼시 스탬포드 브릿지 무패 기록이 하필 리버풀한테 깨지다니... ㅠ.ㅠ
    좀 많이 분하네요.
    주력 선수들의 부상 여파가 결국 이런 중요한 경기에서 나타나나요...
  • Lucypel 2008/10/27 11:22 #

    이번 시즌 초반에는 확실히 리버풀이 다른 어떤 팀보다도 강력했으니까요. 사실 승점 20점 넘은 팀이 리버풀과 첼시, 헐이라는 점에서 깨진다면 리버풀에게 깨질 확률이 높았죠. (..)
  • 반바스틴 2008/10/27 09:47 # 답글

    드디어 첼시저 기록을 깨뜨렸죠 86경기 ㄷㄷㄷ

    설마설마했는데.... 리버풀팬으로써 비기고와도 충분했는데 이겨버렸으니 원 ㅎㅎㅎ

    진짜 이번시즌 기대해도 될듯
  • Lucypel 2008/10/27 11:22 #

    진짜 이번 시즌은 기대해봐도 될 듯 합니다. 좀 너무 잘해요. (;;)
  • 소닉 2008/10/27 10:23 # 답글

    진짜 캐러거가 후덜덜했죠.....아넬카 완전히 지워버렸으니.

    정말 첼시의 3톱들이 gg...후반에 투입된 디 산토가 훨씬 무서웠음.

    그리고 백미는 신승대 캐스터의 돌파하는 마홀딩!!!!ㅋㅋㅋㅋㅋㅋ
  • Lucypel 2008/10/27 11:22 #

    디 산토가 헤딩은 정말 잘 따내던데요;; 제일 막판에 들어온 히피아말고는 디 산토와의 경쟁에서 이기질 못하더라구요. (먼산)
  • GrayFlower 2008/10/27 10:48 # 답글

    이번 시즌 리버풀은 우승을 향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네요. 포털의 관련 기사에 달린 공감 덧글에 아넬카를 계속 쓴다면 더이상 첼시팬이길 포기하겠다는 덧글이 기억에 남습니다.^^;;
  • Lucypel 2008/10/27 11:23 #

    헌데 사실 드록바가 부상으로 빠진 이상 아넬카 말고 스트라이커 자원으로 쓸 선수가 없는 것도 문제죠. 사실 어제 경기는 셰브첸코라도 있었으면 하고 생각날 경기였을 겁니다. (..)
  • 아이리스 2008/10/27 11:54 # 답글

    첼시는 선제골을 허용하더라도 어떻게든 따라붙는 저력을 발휘했었는데 어제도 예외는 아니더군요. 디 산토 투입 후에 거세게 몰아붙일 때는 정말 가슴 졸이면서 봤습니다.
  • Lucypel 2008/10/27 12:01 #

    그만큼 리버풀의 수비가 좋았던 것도 있겠죠. 게다가 공격진의 선수들이 부진한 것도 중요할 거구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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