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La Liga 15R: Barca vs RealM by Lucypel

엘 클라시코.

이 다섯글자만큼 전세계의 축구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카탈루냐와 카스티요의 오랜 갈등을 아름다운 축구로 바꾸어놓은 두 클럽,
FC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지구상 가장 치열한 더비 매치.
두 클럽의 수많은 별들, 엠블럼에 새겨진 것들과 피치 위에서 뛰는 것들 뿐만 아니라
그 가슴 깊숙한 곳에서 흘러 넘치는 치열한 열정의 승부는 언제나 최고의 마약과 같다.

이번 엘 클라시코에 임하는 두 클럽의 분위기는 극과 극이었다.
과르디올라 감독이 부임한 바르샤는 쾌조의 경기력으로 승리를 이어나가며
경기당 3득점이 넘어가는 막강 화력으로 이번 시즌 유럽 최고의 클럽이었고,
앓는 소리를 하던 슈스터 감독을 경질한 레알은 토트넘에서 대실패한 라모스 감독을 영입하며
4위권에서도 벗어나버린 상황에서 어떻게든 분위기 반전을 노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선수들의 면면을 살펴보아도 마찬가지였다.
최고의 골잡이 반 니스텔루이가 부상으로 제외된 가운데 로벤도 빠져 있었고
왼쪽 측면에서 수비를 해줄 수 있는 에인세도 출장할 수 없던 레알에 비해서
막강 화력을 자랑하는 앙리-에투-메시 쓰리톱이 건재한 가운데 결원이 없는 바르샤는
최근의 기세에 더불어 선발 명단에서도 상대를 압도해 들어갈 정도였다.

하지만 킥오프 직후부터 이어진 경기의 흐름은 시작 전의 기세와는 다소 달랐다.
물론 캄프 누에서의 바르샤가 끊임없이 경기를 주도하고 공을 소유하며 경기했지만
레알 선수들의 투지 넘치는 육탄 방어에 시원시원한 공격을 해내지는 못한 것이다.

드렌테와 스나이더를 좌우 윙어로 배치하며 4-4-2의 형태로 출발했던 레알이지만
발빠른 드렌테가 역습 상황에서 빠르게 공격에 가담한 반면 스나이더는 수비에 임했고
중원의 가고와 구티가 수비적인 역할에 치중하면서 사실상 4-3-3과 같은 형태가 되었다.
왼쪽 풀백으로 자리를 옮긴 세르히오 라모스는 메시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오랫만에 원래 자리로 돌아온 미셸 살가도 역시 앙리를 상대로 맹활약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살가도였다.
이미 어린 오른쪽 풀백으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수준으로 성장한 라모스에 비해
급격한 노쇠화로 경기력이 떨어지며 완전히 밀려버린 살가도의 모습은
갈락티코 정책과 함께 환히 빛났던 레알의 퇴색한 과거를 보는 듯 했지만,
이번 경기에서의 살가도는 전성기 때의 기량을 보이는 듯이 뛰어다녔다.
물론 떨어진 신체 능력과 판단력이 다시 젊었을 시절의 것으로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레알의 엠블럼을 달고 오랜 시간 뛰었던 그의 심장은 캄프 누의 피치에 선 위기 상황에서
다시금 그 어떤 선수보다도 격렬하게 뛰어 오르며 최고의 상대들을 막아선 것이다.

최전방의 라울과 이구아인, 최후방의 카나바로와 메첼더까지 투혼을 보인 레알에 의해
바르샤의 공격은 많은 시간을 소모했음에도 매력적인 장면을 그만큼 보이지는 못했다.
적어도 건재한 레알의 센터백에게 가로막힌 에투는 완벽한 기회만을 노렸을 뿐이었고
야야 투레의 간헐적인 돌파를 제외하면 샤비와 구드욘센은 가고와 구티에게 가로막혔다.
아비달의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한 앙리가 살가도를 상대로 나름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몸을 던져 육탄 방어에 나서는 레알의 수비진은 적어도 골문까지 허락하지는 않았다.

그 중 바르샤가 기대했던 메시는 메시답지 않은 모습으로 무기력했다.
오랫만에 자신의 것에 적어도 비교라도 해볼만한 풀백을 상대한 메시는
라모스의 활동량과 속도, 그리고 체격에 평소처럼 여유로울 수 만은 없었다.
오른쪽 풀백으로 메시를 도와야 했던 다니 알베스는 드렌테와 공수 양면에서 부딫히며
메시를 지원하는 데에 그닥 효과적이지 못했던 것 역시 메시에게는 어려움이었다.
설혹 라모스를 돌파한다 해도 그 뒤에서 달라붙는 카나바로와 메첼더의 수비는
이미 많은 기력을 소모한 메시에게는 결코 간단한 문제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전반에 있었던 가장 좋은 기회는 레알의 쪽에서 터져나왔다.
전반 중반 역습 상황에서 또다시 빠르게 뛰쳐나간 드렌테는 결국 수비진을 뚫어냈고
완벽하게 열린 뒷공간에서 빅토르 발데스 골키퍼를 홀로 상대하게 된 것이다.
레알 팬들에게는 부상으로 빠진 로벤이 절실히 아쉬웠던 바로 그 상황에서
비록 드렌테의 슈팅을 발데스 골키퍼가 환상적인 선방으로 막아내기는 했지만
적어도 전반 내내 경기의 흐름이 레알에게 불리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후반 들어서도 경기의 흐름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비록 스나이더가 좋지 못한 몸상태로 전반 36분만에 팔랑카로 교체되었고
격렬한 수비, 특히 메시에 대한 수비로 인해 메첼더와 라모스, 드렌테가 경고를 받았지만
클럽의 급격한 부진 속에서도 바르샤에게만은 지지 않겠다는 레알 선수들의 투지는
여전히 바르샤의 맹공을 막아내고 도리어 역습을 펼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래도 시간은 흐르고 승부의 추는 어느 쪽으로라도 기울기 마련이고,
이번 엘 클라시코에서 먼저 승부를 결정지을 기회를 얻은 것은 바르샤 쪽이었다.
구드욘센을 부스케츠로 교체하며 중앙에서 샤비의 역할을 늘린 과르디올라 감독은
후반 69분 부스케츠가 페널티 박스 안에서 살가도에게 반칙을 얻어낸 것으로
또다시 자신의 감독으로서의 능력과 운에 대한 긍정적 평가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리고 페널티 스팟에 선 것은 에투였고, 골문을 지킨 것은 이케르 카시야스였다.

이케르 카시야스를 부르는 레알 팬들의 호칭 중 하나는 "산 이케르"이다.
그야말로 성자, 성인에 가까울 정도로 엄청난 기적들을 보여주었던 카시야스는,
레알이 힘든 시절에는 "카시야스에 의한, 키시야스를 위한, 카시야스의 레알"을 만들었던
바로 그 카시야스는 에투의 골문 오른쪽을 노린 페널티킥을 멋지게 막아내며
캄프 누에서 절대로 질 수 없다는 레알의 투지를 큰 소리로 포효했다.

지난 14라운드에서 치명적인 실수를 너무 많이 저지르며 팀의 역전패에 빌미가 되었던 그가
바르샤와의 이번 15라운드에서 환상적인 선방을 연이어 보여준 것은 대단한 것이었다.
아무리 수비들이 몸을 던지는 투혼을 보인다해도 골키퍼가 한심한 상태라고 한다면
바르샤 정도의 공격력이라면 두어골 뽑아내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 쉬운 일이기 때문이다.
평범한 골리에서 다시금 산 이케르로 돌아간 카시야스의 환상적인 기량은 정말 대단해서
페널티킥의 선방 뿐 아니라 에투와 앙리와 메시의 수많은 슈팅들을 모두 막아내고 말았다.

그리고 라모스 감독은 구티 대신 하비 가르시아를, 이구아인 대신 반 더 바르트를 투입하며
수비와 역습을 동시에 강화하는 선택을 함으로써 끝까지 승리를 노리는 집념을 보였고
후반 83분까지 감독의 집념과 선수들의 투지는 끝끝내 바르샤를 붙잡고 늘어섰다.

그리고, 바르샤의 에투가, 누구보다 바르샤의 푸욜이 드디어 해냈다.
후반 83분 샤비의 코너킥을 누구보다 높게 떠올라 헤딩으로 따낸 푸욜의 도움은
에투의 발 앞에 떨어졌고, 이미 한번의 기회를 놓쳤던 아프리카의 사냥꾼은
두번 다시 없을지도 모를 환상적인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고 골문으로 밀어넣었다.
카시야스가 몸을 날려 공의 진로를 바꾸었고 마지막까지 발을 뻗은 수비가 있었지만
푸욜이, 바르샤의 주장이 남겨준 기회를 실패로 돌릴만큼 에투는 한심하지 않았다.

사실상 이 골로 승부가 결정지어졌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반 니스텔루이와 로벤이 빠진, 게다가 이구아인과 스나이더마저 교체된 레알이
정상적인 전력의 바르샤를 상대로 골을 넣기에는 공격 자원이 너무 부족했고,
오랜 갈증 끝에 끝내 득점에 성공하며 기세를 올린 바르샤의 상승세는
레알의 단순하고 간단한 공격 따위는 쉽사리 떨쳐낼 수 있었다.
도리어 공격적으로 나선 레알의 수비 뒷공간을 공략한 바르샤는
후반 91분에 레알의 수비진을 완전히 무너뜨린 앙리가 메시에게 패스하여
다시금 카시야스와 카나바로가 버틴 레알의 골문을 가르는 데에 성공했다.

그렇게 또 한번의 엘 클라시코는 마무리되었다.
객관적으로 월등한 전력을 갖고 있던 바르샤는 경기 전체를 지배했지만
후반 83분까지 캄프 누에서 심리적인 우위를 지켜낸 것은 레알의 자존심이었다.
경기가 종료되었음에도 가장 눈에 띈 선수는 페널티킥을 막아낸 산 이케르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승리의 함성으로 밤하늘을 울린 것은 에투와 메시, 그리고 카탈루냐였다.

이번 경기를 통해 바르샤는 라 리가 1위를 더욱 공고히 했고
레알은 지역 라이벌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게도 밀리며 6위까지 떨어졌지만,
또한 바르샤와 레알의 오랜 앙숙 관계에서도 승과 패를 나누어갖게 되었지만,
그만큼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고 최고의 상대임을 다시금 되새긴 경기였을 것이다.
이번 시즌 그 어떤 클럽도 바르샤를 상대로 이만큼 멋진 수비를 펼쳐 보이지 못했고,
이번 시즌 그 어떤 클럽도 레알을 상대로 이만큼 멋진 승리를 따내지 못했으니까 말이다.

이제 이번 시즌의 엘 클라시코는 한번 남았다.
물론 라 리가가 아닌 다른 대회에서 맞설 가능성도 없지 않지만,
그런 것들은 리가에서의 경기와는 또다른 느낌이고 또다른 대회일 뿐이다.
한 시즌 전체를 지배한 클럽에게 주어지는 것이 리그에서의 챔피언 타이틀이고
바로 그 프리메라리가의 타이틀만이 바르샤와 레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만큼, 다음 엘 클라시코는 또다시 격렬한 기세의 싸움이 될 것이다.

다음은 산티아고 베르나베우다.
레알은 오늘의 쓰디 쓴 패배를 되새기며 기다릴 것이고
바르샤는 오늘의 달디 단 승리를 이어가며 들어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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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아이리스 2008/12/16 12:41 # 답글

    최악의 상황에서도 라이벌다운 투지를 잃지 않은 레알 마드리드도 놀라웠습니다. 역시 다른 팀과의 대결에서는 보기 힘든 팽팽함이 느껴지더군요;;
  • Lucypel 2008/12/16 13:01 #

    엘 클라시코는 확실히 시즌과는 별개로 그들만의 흐름에서 치뤄진다는 한준희 해설의 말이 실감나는 경기였지요. (웃음)
  • GrayFlower 2008/12/16 13:45 # 답글

    지지 않겠다는 레알 선수들의 정신력이 정말 대단하더군요. 승부의 결과야 어쩔 수 없겠지만 다음 더비에서는 새로운 결과가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 Lucypel 2008/12/17 11:26 #

    다음엔 이겨야지요! (웃음)
  • 소닉 2008/12/16 17:07 # 답글

    이게 진정한 더비 경기구나...라는 느낌 팍팍...전력 차이가 좀 나는 데도

    투지로 죄다 막아내는....ㅎㄷㄷ 했지요..0:0으로 끝났으면 좋았을텐데.ㅋㅋ
  • Lucypel 2008/12/17 11:26 #

    레알이 좀 넣었어도 괜찮았을 텐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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