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FA Cup 4R: Liv vs Eve by Lucypel

오랜 세월동안 츤츤거리던 두 클럽이 사랑에 빠졌다.

지난 화요일 새벽의 프리미어십 22라운드에서도 한골씩 주고받으면서
서로에 대한 돈독한 관심과 애정을 확인했던 머지사이드의 원수들은
곧바로 이어진 FA컵 4라운드에서도 또다시 한골씩의 무승부를 거두며
서로간의 감정이 더이상 불신과 분노가 아니라 돈독한 우정임을 보였다.

또다시 에버튼을 앤필드로 불러들인 리버풀은 승리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최전방의 토레스를 중심으로 좌우에 바벨과 카이트를 배치하며 공격진을 두텁게 했고
마스체라노와 알론소를 동시에 투입하며 제라드의 수비 부담을 최소한으로 줄여 주었다.
세명의 스트라이커 자원과 득점력 높은 공격형 미드필더를 동시에 투입함으로써
강한 압박으로 지난 경기에 임했던 상대를 완전히 때려부수려 한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리버풀의 의지는 생각만큼 실현되지 못했다.
무엇보다 문제가 되었던 것은 다수의 공격 자원이 낭비되었다는 점이다.
토레스와 바벨, 카이트가 모두 박스 안에서의 득점력이 좋은 선수였기 때문에
이 선수들이 골문 앞으로 달려들어 상대의 중앙 수비를 압박하는 것과 동시에
좌우의 공격적인 풀백인 도세나와 아르벨로아가 오버래핑하여 측면을 공격하는 것이
리버풀이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만 하는 가장 좋은 공격 형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세명의 스트라이커가 동시에 그리고 유기적으로 박스 안에 위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리버풀의 공격이 이렇게 맥을 추지 못한 것은 에버튼의 수비가 좋았기 때문이다.
최근 야쿠부와 사하의 부상으로 제대로 된 포워드 하나 없는 에버튼의 상태이기는 하지만
그만큼 많이 투입하는 미드필더들이 중원을 제대로 압박하고 공수에 임한 것이 좋았고,
점점 물이 올라가는 수비진들의 기량은 토레스와 제라드마저 완벽하게 옭아매었다.

특히 필 자기엘카와 줄리안 레스컷의 센터백 조합은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지난 시즌 이미 최정상급인 자신의 기량을 유감없이 증명했던 토레스를 상대로
자기엘카와 레스컷이 보여준 수비는 그야말로 최상의 모습이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단단한 체격과 엄청난 순발력으로 상대 수비를 단숨에 떨쳐내는 토레스의 공격은
그 엄청난 순발력을 따라붙어 절대로 공간을 내어주지 않아야 막아낼 수 있는데,
레스컷은 자신의 신체적인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며 그런 수비에 성공한 것이다.

잉글랜드 대표팀의 차세대 수비수로 각광받았던 레스컷은
발군의 신체적인 능력과 왼발을 능히 사용하는 장점을 갖고 있지만
수비수로서 반드시 필요한 침착함과 영리함이 부족한 단점을 지적당했었다.
하지만 토레스를 상대한 이번 경기에서는 정신까지 확실히 잡고 있으면서
토레스가 어디로 빠져나가든지 절대 놔주지 않고 수비에 임하며 최고의 모습을 보였다.

게다가 토레스가 넓게 움직이며 레스컷을 끌어낸 빈 자리도 절대 비워두지 않았다.
레스컷이 토레스를 막았다면 자기엘카는 넓게 움직이면서 나머지 포워드를 막았고
미드필더들이 포백의 빈 공간을 계속해서 채워주면서 리버풀에게 공간을 주지 않았다.
자기엘카의 수비는 바벨과 카이트를 바꿔가며 막아내는 동안 빈 중앙의 공간은
필 네빌과 오스만이 내려와서 제라드를 막아주며 리버풀을 무력화시킨 것이다.

여기에 레스컷의 선제골이 전반 27분만에 터진 것은 에버튼에게 더욱 희소식이었다.
왼쪽에서 얻어낸 코너킥에서 케이힐이 리버풀의 수비진을 완전히 떨어뜨린 뒤 헤딩했고
레이나 골키퍼 앞에 서있던 레스컷이 살짝 방향을 바꿔놓으며 득점에 성공한 것이다.
지난 프리미어십 경기에서도 극적인 동점골을 코너킥 세트피스에서 터트렸던 케이힐은
리버풀의 수비진과 미드필더들이 장신 선수들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사이에
먼 포스트 뒤에서 돌아들어오며 알론소의 수비를 떨쳐내고 헤딩에 성공해냈고,
공을 따라 시선이 옮겨진 순간 레스컷의 머리에 맞으며 레이나 골키퍼도 어쩔 수 없었다.
리버풀 수비진이 완전히 집중력을 잃으며 사람을 막아내지 못한 실수에 겹쳐서
에버튼 공격진의 완벽한 호흡과 움직임이 일찌감치 선제골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이후 전반 내내 리버풀은 더욱 답답한 경기를 펼칠 수 밖에 없었다.
선제골을 얻어간 에버튼은 더욱 여유있게 수비적인 경기 운영을 펼칠 수 있었고
기세를 올린 레스컷과 그 일당들(?)은 기세를 살려 더욱 완벽한 수비를 보였다.
그나마 토레스가 계속 바깥쪽으로 움직이며 공간을 만들어 보려고 노력했지만
투톱이 아닌 쓰리톱의 공격진은 중앙에 생긴 공간을 활용할 선수는 보이지 않았다.
제라드의 수비 부담을 줄이기 위해 투입한 알론소와 마스체라노의 중원 조합은
짙은 압박을 해소하기 위한 기동성이 떨어지는 문제는 어떨 수 없었다.

후반 들어서도 경기의 흐름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물론 환상적인 호흡의 토레스와 제라드가 예술적인 골을 성공시키며
일찌감치 경기의 흐름을 다시 팽팽하게 바꿔놓기는 했지만 결과까지 바꾸지는 못했다.

후반 54분에 터진 제라드의 동점골은 그야말로 예술 작품이었다.
수비 진영에서 한번에 넘어온 공을 가슴으로 받아낸 토레스의 등 뒤에는
에버튼의 골문과 함께 두명의 수비수가 매우 강한 압박을 넣고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토레스는 침착하게 발등으로 멀어져가는 공을 다시 당겼고
곧바로 오른발 뒤꿈치로 자신의 오른쪽을 스쳐 뒷공간으로 파고드는 제라드에게
그야말로 완벽한 패스를 넣어주었고, 제라드는 정확한 왼발 슈팅으로 득점했다.
토레스의 우아하다못해 눈을 믿을 수 없는 패스와 제라드의 깔끔한 마무리까지
후반 일찌감치 터진 동점골에 경기의 흐름은 단숨에 리버풀로 넘어오는 듯 했다.

그러나 그 이후로도 리버풀의 공격 흐름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래도 바벨과 카이트가 전반보다는 좀 더 적극적으로 박스 안으로 들어섰고
도세나와 아르벨로아의 오버래핑 역시 좀 더 많이 이루어진 것은 좋았지만
그것이 무언가 가시적인 결과로 나타나지 못했다는 점은 결국 좋지 못했다.
후반이 시작되며 베니테즈 감독의 지시를 받아 공격 흐름을 정비한 리버풀에 맞서
동점골을 내어주면서 다소 흔들리는 듯 했던 에버튼 역시 수비진을 정리하면서
리버풀이 높은 점유율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슈팅을 만들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경기의 흐름을 그렇게 잦아들었다.
체력이 떨어진 아니체베와 카스티요 대신 고슬링과 로드웰을 투입한 에버튼에 비해
공격진에 변화를 줄 만한 선수가 부족했던 리버풀은 바벨 대신 리에라를 투입했을 뿐이고,
단순히 그것만으로는 경기의 결과를 바꿀만한 그럴듯한 변화를 만들 수 없었다.

결국 리버풀은 또다시 구디슨 파크로 원정을 떠나야만 하게 되었다.
벌써 이번 시즌에만 세번의 머지사이드 더비를 치뤘던 리버풀과 에버튼이
2월 초에 또다시 더비를, 그것도 단판에 반드시 승부를 내야하는 경기를 치르게 된것이다.
비록 과거의 유혈낭자한 더비는 더이상 펼쳐보이지 않는다 하더라도 극도로 치열한 경기를
게다가 앤필드에서가 아니라 원정에서 치뤄야만 하는 리버풀의 부담은 상당할 것이고
다소 떨어진 전력으로도 리버풀 원정에서 두번의 무승부를 연속으로 거둬낸 에버튼은
확실히 해볼만하다는 느낌을 갖고 5라운드로의 진출을 계획하고 있을 것이다.

이번 시즌 초반부터 일찌감치 승수를 쌓아나가며 기세를 올렸던 리버풀이
최근 지지는 않더라도 계속 무승부에 머무르면서 흐름을 놓친 것은 중요한 사실이다.
이미 유나이티드에게 프리미어십 선두 자리를 내어준 리버풀이
FA컵에서마저 에버튼에게 패하며 5라운드 진출에 실패한다면
이번 시즌에도 또다시 무관의 제왕이 그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토레스의 우아한 도움은 긍정적이고 제라드의 여전한 활약도 고무적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것만 가지고는 리버풀에게 우승 트로피는 너무 먼 목표일 뿐이다.
에버튼의 사랑이 담긴 손길을 뿌리치고 서둘러 저만치 달려나가지 못한다면
결국 그 손길에 붙잡혀 뒤쳐지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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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소닉 2009/01/28 11:53 # 답글

    케이힐...선제골 때 정말 골대 뒤에서 슬금슬금 다가와서....진짜 乃..

    토레스 패스는 뭐...그냥 키핑이 할 말이 없었죠.ㅋ
  • Lucypel 2009/01/28 15:42 #

    토레스 진짜 아름답습니다. ㅠㅠb
  • GrayFlower 2009/01/28 19:14 # 답글

    에버튼이 잘 하더군요. 여튼 두 팀이 붙었던 최근 2경기 모두 보다가 졸았네요.ㅜㅜ
  • Lucypel 2009/01/28 22:19 #

    요즘 정말 피곤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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