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EPL 30R: Ful vs ManU by Lucypel

졸지에 나는 지난 라운드 리뷰에 거짓말을 쓴 것이 되고 말았다.
언제라도 무서운 상대인 리버풀에게 참패한 지난 29라운드는
이번 시즌 최악의 경기가 아니었던 것 같다.

풀럼을 상대로 유나이티드가 두골을 내주며 패배하리라고 생각하는 일은 어려웠다.
이미 연기되었던 3라운드와 FA컵 경기를 연이어 치르면서 쾌승을 거두었던 유나이티드가
아무리 크레이븐 커티지에서의 성적이 좋은 풀럼이라고 해도 패배할 것 같지는 않았고,
도리어 지난 라운드의 리버풀에게 당한 참패가 정신 무장을 확실히 하게 해서
시원하게 밀어붙인 후 가볍게 승리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호지슨 감독의 풀럼은 정말 단단히 준비해 나왔다.
지난 라운드에 이어서 다소 헐거운 선발 명단을 선택한 유나이티드를
최전방부터 강하게 압박하며 최소한 지지는 않겠다는 경기를 보인 풀럼이었고,
그런 풀럼을 상대로 유나이티드는 불운까지 더해지며 완전히 무너져내렸다.

최근 에이스 호날두의 부진은 지나치리만큼 눈에 띄고 있다.
체력적으로도 상당한 부담일 것은 충분히 이해해줄 수 있지만
상대 수비에게 사실상 완전히 읽혀버린 움직임들은 거의 망가진 수준이다.
게다가 자신감을 완전히 잃어버린 데다가 동기 부여도 부족해보이는 듯한 정신 상태는
더이상 그에게 경기 출장을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생각될 정도로 한심한 상황이다.
절대로 정상급 풀백이라고 볼 수 없는 판실과 콘체스키를 상대로도
단번에 돌파하지 못하고 어느샌가 겹겹이 둘러쌓여 공을 빼앗겼고,
중앙 돌파는커녕 측면 돌파만 간간히 시도하며 크로스로 일관한 모습은
더이상 발로도르를 수상한 선수에 어울리는 것이 아니었다.

호날두가 부진해도 유나이티드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의 부진을 채워줄 수 있는 다른 선수들의 활약이 있었기 때문이다.
측면에서는 박지성이 언제나 성실하게 뛰었고 루니가 언제나 움직여 주었다.
중앙에서는 스콜스와 긱스의 노장이 경험을 더했고 캐릭이 점점 더 노련해졌다.
부족한 듯 싶으면 눈에 띄었던 플레쳐와 오셔의 경기력도 상당했었고
어린 선수들 역시 중요한 순간에서 자기의 몫을 톡톡히 해주었다.

하지만 이번 30라운드에서 그런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경기의 승패를 사실상 갈라버렸던 첫번째 실점 장면은 박지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기껏 수비에 가담해서 빼앗은 공을 뒤로 돌린 패스가 완전히 벗어나면서
순식간에 풀럼의 역습으로 코너킥까지 허용하게 되는 빌미가 되었고,
그 코너킥 상황에서 반 데 사르의 선방이 다시금 슈팅으로 연결되자
골문 앞의 스콜스가 반사적으로 손을 쓰는 바람에 퇴장당한 것이다.
페널티킥으로 허용한 실점과 스콜스의 퇴장이 불러온 숫적 열세.
전반 18분만에 유나이티드는 너무나 커다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전반의 유나이티드는 그야말로 참혹한 수준이었다.
최전방의 베르바토프는 거대한 상대 수비들에게 둘러쌓여 고립되었고
평소라면 그의 숨을 트이게 해주었을 루니와 테베즈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스콜스가 사라지면서 중원에서 패스를 공급할 수 있는 선수가 사라져버린 것은
2선에서 자유로운 역할을 부여받은 호날두에게 더이상 자유는 주어지지 않았고
부지런히 측면을 움직여야 할 박지성에게는 공격에 사용할 공이 없었으며
역시 측면에 배치되었던 플레쳐는 중원에 발이 묶이며 움직일 수 없었다.

무엇보다 치명적이었던 것은 중원에서의 무게중심이 사라진 것이었다.
패스를 넣어주는 것 이외에도 스콜스가 수행하고 있던 중요한 역할은
수비진 앞에서 상대의 공격을 일차적으로 늦추거나 끊어내는 것이었고
그것으로부터 유나이티드 특유의 재빠르고 강력한 역습이 이루어졌어야 하는데,
스콜스의 퇴장은 안 그래도 숫적 열세를 맞이한 유나이티드에게
수비적인 허술함과 공격적인 무딤을 동시에 가져다 준 것이다.

게다가 유나이티드는 전반이 끝남과 동시에 베르바토프마저 잃었다.
풀럼 수비진의 과격한, 솔직함 심정으로는 더러운, 수비에 시달린 유나이티드는
다우드 주심의 비정상적인 판정에 베르바토프의 부상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고,
후반 시작과 함께 루니를 교체 투입하는 상황을 맞이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루니의 투입은 경기에 활력을 더했고 꽤 좋은 과정을 만들어냈지만,
전략적인 선택이라기보다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아쉬울 수 밖에 없다.

다우드 주심의 판정은 정말로 비정상적이었다.
왠만하면 심판의 판정을 갖고 왈가왈부하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이번 경기에서 이뤄진 판정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기술적으로 현격히 뒤지는 풀럼이 유나이티드를 잡기 위해서는
신체적으로 과격한 형태의 수비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이해하지만,
정상적인 심판이라면 그런 수비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반칙을 불었어야만 했다.
스터드가 허벅지를 찍어도, 발과 얼굴이 스쳐지나가도 휘슬은 불리지 않았고
도리어 급한 마음에 공을 집어던진 루니에게는 단숨에 퇴장이 주어졌다.

물론 루니가 잘했다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이미 경고가 한장 있었고, 경고가 더해지면 퇴장이었다.
그가 공을 집어던진 것은 주심을 향해서였다기보다는 동료를 향해서였고,
그것이 주심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 하더라도 퇴장은 앞뒤 흐름을 봤을 때 심했다.
바로 직전의 추가 실점 장면에서도 에브라의 헤딩을 발로 따내는 풀럼은 내버려두고,
스치지 않더라도 위험한 장면으로 반칙을 불 수 있는 장면도 그저 넘어간 주제에,
유나이티드에게 경고와 퇴장을 남발한 다우드 주심은 정말 비정상적이었다.

결국 유나이티드는 완전히 패배했다.
후반 들어 루니가 투입되면서 공격이 상당히 살아난 것에 희망이 보였지만
주심의 미친 판정에 슈와쳐 골키퍼의 신들린 선방마저 더해지면서 촛불은 꺼졌다.
반 데 사르 역시 눈부신 선방을 여러 차례 보여주었지만 게라의 슈팅은 너무 좋았고,
유나이티드에게 남은 것은 수많은 경고와 두장의 퇴장, 그리고 추가 징계 뿐이었다.

즉결 퇴장당한 스콜스와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한 루니는 다음 경기를 결장할 것이다.
이미 2경기 징계를 받은 비디치 역시 다음 경기에 출장할 수 없을 것이다.
호날두 역시 누적 경고가 다섯장이 되면서 다음 한 경기를 결장할 것이고,
에브라와 에반스 역시 경고를 받으며 누적된 경고의 숫자를 하나씩 늘렸다.
루니에 테베즈가지 투입하며 전형마저 파괴했던 유나이티드에게 남은 결과로는
우승 경쟁 중인 첼시가 토트넘에게 덜미를 잡히며 승점 차이가 유지되었다는 것 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음주에 찾아온 국가대표 경기 주간이 가져다 준 휴식일 것이다.
리버풀과 풀럼에게 당한 연이은 충격의 패배는 그야말로 참혹한 수준이어서
선수들에게 정신적인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시간이야말로 소중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한번의 패배로 잊고 넘어가기에 이번의 연패는 너무나 큰 상처이다.

유나이티드의 1월과 2월은 그야말로 아름다운 겨울이었다.
전설로 남게될 무실점 기록을 이어나가며 세계 최고의 수비력을 과시했고
드디어 녹아내린 베르바토프가 가세한 공격진은 어떤 클럽을 상대로도 승리했다.
하지만 그렇게 기나긴 축제의 시간을 지나고 난 이후의 하락세는
상승세가 길었던만큼이나 격하고 길게 다가오려는 것 같다.

그러나 여전히 유나이티드는 프리미어십 선두이다.
한 경기 덜 치른 상황에서도 첼시에게 승점 4점을 앞서 있고,
경기수가 같은 리버풀에게도 역시 승점 4점을 앞서 있다.
비록 주축 선수들의 징계와 부상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지만
그에 준하는 최고의 선수들이 역시 그 자리를 메꾸려고 기다리고 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도 객관적으로 까다로운 상대들을 모두 피해낸 유나이티드라면
정신을 차리고 다시금 호흡을 가다듬는 것만으로 다시금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입에 쓴 약이 몸에 좋은 법이다.
호된 패배를 딛고 일어나는 것이야말로 강자의 능력이며,
유나이티드는 이미 그러한 강자의 능력을 여러 차례 보인바 있다.
또다시 일어나 승리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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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소닉 2009/03/23 00:08 # 답글

    날동이는 출장할 듯...해요..저번 기사였나...2월까지 옐로 무효된다는 걸 본 적이..

    그리고 축구를 배구로 안 스콜스나 피구로 안 루니나...

    뭐 게라 간지골이 ㅎㄷㄷㄷㄷㄷㄷㄷ
  • Lucypel 2009/03/23 08:29 #

    뭐, 스콜스의 경우에는 퇴장이 당연하지만 또 그 상황이라면 반사적으로 손이 올라갈 법도 한 위치였으니 어쩔 수 없었지요. (한숨)
  • FrontierJ 2009/03/23 12:19 # 답글

    뭐 어떻게 보면 호날두와 카카의 차이가 여기서 드러나는걸지도..
    카카는 컨디션 난조를 보여도 최소한 기대치에 도달하는 활약을 해주는 반면..
    호날두는 한번 부진하면 답이 없을정도..
    최근에 카카 잔부상이 늘어서 유리몸화 되는거 아닌지.. 걱정되기도 하지만.
    역시 4312중 1에 걸맞는 최상의 유닛.
  • Lucypel 2009/03/23 23:54 #

    최소한 기대치라는 게 좀 다르죠. 카카와 호날두의 단순 비교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애초에 역할 자체가 다른 선수인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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