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rts] FA Cup Semifinal: ManU vs Eve by Lucypel

유나이티드와 퍼거슨 감독은 시즌을 위해 FA컵을 포기했다.
이런 저런 허울과 이해할만한 논리로 적당히 포장해내기는 했지만
어쨌거나 이번 준결승에서 볼 수 있었던 유나이티드는 포기한 모습이었다.

선발 명단의 투톱이 테베즈-마케다 조합이었던 상황에서
좌우의 윙어마저 웰벡-박지성이었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테베즈와 박지성은 주전급 선수로서 체력 안배를 통해 출장한 것이라고 봐도
이제 갓 리저브팀에서 승격한 두명의 10대 선수가 웸블리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고
게다가 한명은 본래의 포지션인 포워드도 아닌 윙어였다는 것은 더욱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렇다고 공격진만 어린 선수들로 구성된 것은 아니었으니 더욱 문제였다.
중원은 안데르송-깁슨 조합으로 주전이 아예 빠져버린 상태로 경기에 임했고
좌우 풀백으로 출장한 파비우와 하파엘 형제는 부상에서 회복된지조차 얼마 되지 못했다.
퍼디낸드-비디치의 센터백이 아무리 중앙에서 잘 버텨준다고 하더라도
포스터 골키퍼가 실수하면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리는 상황이었다.

결국 무언가 특별한 승리를 기대했던 유나이티드는 실패했다.
웸블리에 선 어린 선수들은 자신의 기량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그것은 아직 승리하기에 충분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도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하나의 팀으로서 공수 균형을 잡지 못했다는 점이다.
파비우와 하파엘 형제는 부상에서 갓 복귀한 것 치고는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였지만
특유의 공격력을 다 보이지 못하고 수비에만 묶여 있었던 것은 분명 좋지 못했다.
안데르송과 깁슨 역시 공격보다는 수비적인 위치에서 움직이는 것에 우선했고,
그것이 비록 무실점 경기를 만들었지만 그와 동시에 무득점 경기도 만들었다.
중앙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공격진은 단발적인 기회만을 얻었을 뿐이었다.

애초에 웰벡-마케다-테베즈-박지성의 공격진은 말도 안되는 구성이었다.
스트라이커인 웰벡이 검증되지 않은 채 왼쪽에 포진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공이 없을 때의 움직임으로 상대 수비를 휘저어 동료에게 공간을 만드는 박지성과
패스를 받아 공을 지키거나 슈팅으로 연결하는 데에 익숙한 테베즈에게는
반드시 전술적으로 그들을 활용할 수 있는 포워드 혹은 미드필더가 필요했다.
평소라면 루니와 호날두, 스콜스와 캐릭 등이 해주었을 바로 그 자리가 비어버리자
그들은 마케다와 웰벡만큼도 공을 잡지 못하고 무기력한 모습만 보여주었다.

게다가 깁슨의 경기력은 퍼거슨 감독의 중용을 무색케 할만큼 형편없었다.
제2의 플레쳐가 되려고 하는듯한 깁슨은 이제 완전히 각성해 도움이 되는 플레쳐와 달리
아직까지도 뜬금없이 나오는 묵직한 슈팅을 제외하면 공수에 걸쳐 하는 일이 없었다.
안데르송이 앞에서 넓게 움직이며 공수 연결고리로써 역할하려 노력하고 있던 와중에
뒤에서 침착한 수비와 넓은 패스를 보여주어야 했던 깁슨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특히 후반 67분 박지성 대신 스콜스가 투입되면서 오른쪽으로 옮겨간 이후에는
공을 잡는 기회마저 줄어들어버리며 사실상 유나이티드에게 숫적 열세를 안겨주었다.

만약 퍼거슨 감독이 진지하게 승리할 마음이 있었다면 선발 명단이 달라야만 했다.
퍼디낸드와 비디치가 버틴 수비진은 어떻게 해서든 버틸 수 있다는 생각은 옳았지만
테베즈와 박지성에 신예들로만 구성된 공격진이 득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면 틀렸다.
만약 베르바토프와 스콜스가 선발 명단에 깁슨과 마케다 대신 포함되어 있었더라면
유나이티드의 공격 흐름은 몰라보도록 달라졌고, 에버튼을 침몰시켰을 것이다.

실제로 스콜스가 투입된 이후의 유나이티드는 패스의 흐름이 상당히 부드러워졌고
활동량의 안데르송이 조율의 스콜스와 조합되면서 중원 장악도 조금 나아졌다.
하지만 뒷공간으로의 움직임에 능한 윙어가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의 스콜스는
강한 압박과 수비 진영에 틀어박힌 에버튼의 수비를 벗겨내는 데에 어려움을 겪어야만 했고,
바로 그가 나오기 위해 깁슨 대신 피치에서 걸어나온 박지성을 그리워했을 것이 분명하다.

퍼거슨 감독의 용병술에 매경기마다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감탄하고 마는 일개 팬으로서
퍼거슨 감독의 용병술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하거나 비난하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선발 명단의 활용은 사실상 승리하는 것을 포기한 것이고
FA컵 결승 진출의 운명을 마치 동전을 던져 결정하듯 생각했다고 보는 것이다.

결국 신예를 대거 투입하며 주전들의 체력 안배를 시도했던 유나이티드는
잘 버틴 에버튼을 상대로 득점하지 못한채 자신들의 골문만을 지키는 데에 성공하며
연장전까지 무려 120분을 뛰어야만 한 후 패배하는 가능한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다.
퍼디낸드와 비디치, 테베즈는 풀타임 활약하며 시즌 말미의 체력 부담을 가중시켰고
뒤늦게 투입된 베르바토프는 승부차기의 실패로 패배의 심리적 부담을 한껏 안게 되었다.
FA컵을, 전무후무한 퀸터플의 영광을 포기하면서까지 얻으려했던 이점들이
추가적인 부담들 때문에 그 빛을 잃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다.

내가 바라는 것은 큰 것이 아니다.
그저 매 경기 승리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 승리하는 것이다.
물론 그것이 기나긴 시즌 동안 수많은 경기를 치르며 매번 수행하기는 어렵고
그렇기 때문에 어떤 경기에서는 승리하지 못한채 눈물을 흘려야 함을 알고 있다.

그러나 최선을 다한뒤에 다가오는 어쩔 수 없는 패배는 이해할 수 있지만
이렇게 시작부터 포기한 채 치른 경기에서의 패배는 아쉬울 뿐이다.
차라리 최악의 경기력이었다면 분노하고 큰 소리로 짜증낼 수 있지만
애초에 어린 선수들의 한계가 분명한 상황에서는 그렇게 할 수조차 없다.

그것이 이번 경기가 갖고 있었던 동전의 양면이다.
퀸터플은 다음 시즌에, 그도 아니라면 더 먼 미래에 이룰 수도 있다.
한창 성장하고 있는 어린 선수들에게 이 정도 패배는 절대 아프지 않다.
하지만 노력과는 상관없이 결정된 결과를 지켜보는 것은 너무 힘들다.
남은 시즌, 쿼드러플을 향해 나아가는 길에 다시는 이런 경기가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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