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결국 끝까지 말하지 못했다.
며칠동안 고민했던 많은 말들.
이말은 꼭 해야지 하고 생각했던 말들.
결국은 하나도 하지 못하고,
끝내는 그냥 돌아섰다.

헤어지고 나서 가장 싫었던 일은
무엇보다 그 사람 마음이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던 것이고
정체된 나와는 다르게 변화해 나가던 그 사람 모습이었고
너무너무 싫었고 상처받았으면서도 독하게 대할 수 없었던 나였고
결국은 나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는 그 사람이었다.

행복하면, 더 예쁘게 웃어야 하는데,
내 앞에서는 그렇게 웃지 못하는 모습은
그 예쁜 웃음을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해버렸다.

사실은
나에게 한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물론 돌아올 대답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리고 가장 가까운 친구로 대해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사람의 웃음은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았다.

결국은
돌고 돌아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

기억하니?
내가 술취해서 전화했던 그날.
내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말했던 것.
너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너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너를 좋아한다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냥 그것뿐이다.
그리고 내가 줄 수 있는 마지막 도움은
앞으로는 그 사람을 괴롭히지 않는 것.
행복할 수 있도록,
내 생각 때문에 힘들지 않도록,
그렇게 해 주는 것.

아직도 그 마지막 1주일이 가슴저밀 듯 후회되고
아무렇지도 않다가 울어버릴만큼 아프지만
결국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그것뿐이니까.

사실은 좀 더 멋있게 보내주고 싶었어.
영화나 소설에 나올듯이 좋은 친구로 남고 싶었어.
하지만 내가 벌써 많이 못할 짓을 해버렸구나.
미안해, 고마워.

그리고 넌 듣지 못할테니까,
사랑해.

앞으로 얼마나 더 아플까.
앞으로 얼마나 더 힘들까.
아직 난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숨도 쉴 수 없고
밥도 먹을 수 없고
공부도 할 수 없고
수업도 들을 수 없고
살 수도 없다.

나는 미련한 사람이라
아직도 다 잊지 못하고
미련도 다 떨치지 못하고
하지만.


그 자리에 그 시간에
성시경

살아가는 순간들마다 얼마나 많은 일들이
우연이라는 이름에 빛을 잃었는지
믿기 힘든 작은 기적들

그 자리에 그 시간에
꼭 운명처럼 우리는 놓여있었던 거죠
스쳐지나갔다면 다른 곳을 봤다면
만일 누군가 만났더라면
우리 사랑하지 않았을까요

사랑하는 순간들마다 얼마나 많은 말들이
이별이라는 끝으로 밀어 넣었는지
지나서야 깨닫는 일들

그 자리에 그 시간에
꼭 운명처럼 우리는 놓여있었던 거죠
그댈 안아줬다면 울리지 않았다면
우리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 자리에 그 시간에
헤어질 차례가 되어 놓여졌던 걸까요
그 말을 참았다면 다른 얘길 했다면
우리 이별을 피해갔을 것 같나요

잃어버린 반지처럼
꼭 찾을 것 같아 한참을 헤매겠지만
돌이킬 수 없는 일

그댈 안아줬다면 울리지 않았다면
우리 어떻게 되었을까요

정말 헤어지지 않았을까요


덧.
나는 부족한 사람이라
그 사람에게 기대어서만 살 수 있었고,
지금은 친구들에게 기대어 겨우 살아나간다.
이 말을 들을 사람들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도
고맙다.

by Lucypel | 2007/05/29 22:24 | Blog: Diary | 트랙백(1)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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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Fallen Serap.. at 2007/06/16 15:35

제목 : 그 자리에 그 시간에 - 성시경
무제그 자리에 그 시간에성시경살아가는 순간들마다 얼마나 많은 일들이우연이라는 이름에 빛을 잃었는지믿기 힘든 작은 기적들그 자리에 그 시간에꼭 운명처럼 우리는 놓여있었던 거죠스쳐지나갔다면 다른 곳을 봤다면만일 누군가 만났더라면우리 사랑하지 않았을까요사랑하는 순간들마다 얼마나 많은 말들이이별이라는 끝으로 밀어 넣었는지지나서야 깨닫는 일들그 자리에 그 시간에꼭 운명처럼 우리는 놓여있었던 거죠그댈 안아줬다면 울리지 않았다면우리 어떻게 되었을까요그 자리......more

Commented by 희미 at 2007/05/29 23:48
여태까지 중 가장 바람직한 것 같다. 돌고 돌아 처음으로 돌아왔기 때문일까 ㅇㅅㅇ
...제목은 없지만.
Commented at 2007/05/30 00:0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7/05/30 06:25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Lucypel at 2007/05/30 09:15
희미: 제목이 없는건 너무 횡설수설이라 하나로 제목을 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

익명1: 사람은 다 그런 거 같습니다. 서로 아무도 알 수 없지만, 또 서로 너무나 잘 알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말씀 고맙습니다. ^^

익명2: 시간이 약이겠지만, 그 약이 빨리 들어야 이번 학기를 잘 버틸텐데 말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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