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w] 빛의 화가 모네 (9/20)

사랑스러운 모네의 작품들이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 만남.
그리고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평일 낮에는 사람이 없다는 점.
시원하고 쾌적한 공간에서 모네를 함께하는 것만큼 좋은 일도 흔치 않다.

이번 관람에서 눈에 들어왔던 점 중에 하나는 거친 터치가 주는 입체감이었다.
모네의 작품은 대부분 순간의 빛이 주는 인상에 대한 표현이 많기 때문에,
즉 어떤 대상을 그리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다만 빛의 묘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대상의 형태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고 색과 명암에 대해서 신경을 쓰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형태를 완전히 버린 추상화라고 하기에는 부족한데,
그렇게 형태를 표현하는 주된 방법이 바로 거친 터치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푸른 계열의 연못과 연꽃의 잎이 가득한 캔버스 위에
홀로 붉고 흰 연꽃을 나타낸 터치는 그야말로 화룡정점의 느낌을 주는데,
그저 원하는 색 물감을 잔뜩 덜어서 푹 찍어놓은 듯한 그 거친 터치는
물감의 양이 주는 실재적인 입체감과 조명에 의한 그림자가 더해지고
그것을 연꽃으로 인식하는 나의 생각까지 합쳐지면서 정말 그럴싸한 꽃으로 탄생했다.
단순한 방법이 주는 의외성과 그러한 의외성에서 나오는 대단히 복잡한 완결성.
이번 모네 전시에서 첫번째로 관객을 맞이하는 작품은 그렇게 그려져 있었다.

또다른 생각은 말년에 시력을 잃어간 모네가 느꼈을 감정에 대한 궁금증이었다.
모네는 그야말로 눈에 보이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빛의 매력에 빠졌던 사람이다.
하지만 말년에 병으로 시력을 잃어간 그는 점차로 색감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일부 작품에서 보여지는 지나치게 붉고 짙은 색조의 작품들은
그 색도 많이 과격하지만 형태도 대부분 잃고 흐트러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눈에 보이던 것에 빠졌던 사람이, 이제 눈에 보이는 것이 바뀜을 깨닫는다는 것.
점차로 자신이 사랑했던 것을 제대로 느낄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모네는 어떤 감정과 느낌으로 살아갈 수 있었을까?

나라면, 무척 화가 났을지도 모르겠다.
분하고 억울하고 짜증나서, 더이상 살아갈 의미조차 잃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병에도 불구하고 작품 활동을 계속해나간 모네의 삶을 생각한다면
어쩌면 그는 그러한 변화마저도 빛의 새로운 모습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변한 빛마저도 사랑하고 빠져들어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든 전시장 벽의 색이 너무 곱고 예뻤던 모네의 한국 방문은
이제 다음주 수요일을 끝으로 다시 머나먼 파리로 돌아가며 끝난다.
많이 아쉽고 서운하지만, 그래도 이대로 그저 멀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번 전시에 왔던 작품들은 이미 머리속과 마음속에 남아있고,
파리가 그렇게 멀지만은 않은 곳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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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cypel | 2007/09/21 09:10 | Review: Show | 트랙백(1)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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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CHANMIN - th.. at 2007/09/22 10:48

제목 : 모네, 역시 모네다.
빛의 화가 모네전_서울시립미술관 #00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했다. "같은 강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갑자기 무슨 귀신 포테이토칩 씹는 소리인가 하면, 강은 수 많은 물방울로 구성되어 있는데 강의 흐름에 따라 그 물방울이 끊임없이 움직이므로 다시 발을 담가봐야 아까 그 강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모네가 그리스 철학에 관심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지만 헤라클레이토스랑 통하는 면이 있었나보다. 그도 비슷한 생각을 가졌다. 지금 바로 이 순......more

Commented by 페르시 at 2007/09/21 14:53
Lucypel님은 참 다방면에 능통하시는군여..부럽습니다..
클로드 모네라..저도 좋아하죠..이 화가는...
Commented by 찬민 at 2007/09/22 10:48
모네의 백내장은 1919년경에 절정이지만 그 이후에 주위의 권유로 치료 받았습니다. ^^
트랙백 남기겠습니다.
Commented by Lucypel at 2007/09/22 13:08
페르시: 다 조금씩 아는 것 뿐이죠, 뭐. ^^; 그저 재미삼아 아는만큼만 합니다.

찬민: 1920년대 초반 작품들까지는 붉고 짙고 형태가 없는 경향이 계속되고 20년대 중반 이후로는 시력 회복으로 다시 그 전의 경향으로 돌아오죠. 그런데 문제는 다들 그 10년도 안 되는 시간의 작품들로 야수파니 추상화니 하면서 이야기하는 건 자꾸 마음에 걸리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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