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혹은 일찌감치 터져나온 호날두의 시원한 복귀골과
아직 앳된 선수들의 맹활약이 더해져 시즌 올드 트래포트에서의 첫 승이 만들어졌다.
경기 시작 전부터 퍼거슨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박지성과 하그리브스 등의 이름이 거론되며
어떤 선수가 선발 출장하고 어떤 선수가 새로운 기회를 얻을 것인가 관심을 끌었던 이 경기에
도리어 상당히 생소한 선수들이 대거 포함된 라인업을 선택한 퍼거슨 감독이었다.
직전 주말의 첼시 원정에 선발 출장했던 선수들은 모두 대기 명단에서도 제외되었고,
교체 출장했던 호날두와 오셔, 징계로 자리를 비웠던 비디치가 선발 출장한 것이다.
그 외의 주전급 선수로는 브라운과 긱스가 선발로, 테베즈가 교체로 피치에 나서며
확실히 칼링컵을 컨디션 조절과 신진의 등용문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듯 했다.
특히 대거 선발 출장한 20세 안팎의 어린 선수들은 그런 의지의 증명이나 다름 없었다.
반 데 사르의 부상으로 급히 출장했던 쿠시챡까지 제외된 명단에서 선발 출장한
골키퍼 벤 아모스의 앞에 선 포백에는 어린 브라질리언 하파엘 다 실바가 포함되었고,
중원에는 안데르송과 함께 호드리고 포제봉이 든든히 지켜내기 위해 포진하였다.
나니가 긱스, 호날두와 함께 2선 공격에 나서는 동안 최전방에는 대니 웰벡이 위치하며
선발 명단 중 네명이 완전한 신예로 구성되는 상당히 파격적인 운용을 볼 수 있었다.
안데르송과 나니 역시 아직 어린 선수로 가다듬어야 할 부분이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미드필더와 포워드 가운데에는 긱스만이 노장으로 중심을 잡아주었을 뿐
대다수가 20대 초반 이하의 어린 선수들로만 짜여진 것이었다.
그 와중에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보여준 것은 호드리고 포제봉이었다.
최전방의 웰백과 세명의 윙어 아래에 포진하여 공수 조율이 중요한 유나이티드의 중원에서
안데르송과 호흡을 맞춘 포제봉은 어린 나이답지 않게 원숙한 기량을 선보였다.
특히 보로의 미드필더 여럿에게 둘러쌓인 상황에서도 여유있게 공을 지켜내고
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길고 짧은 패스를 섬세하게 넣어주는 것이 무척 좋았다.
후반 66분 포가테츠의 치명적인 반칙으로 부상당하며 실려나가기 전까지만 해도
유나이티드의 공격의 시작점으로써 팀을 이끌었던 것은 포제봉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다만 포제봉의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고 한다면 다소 부족한 활동량일 것이다.
그다지 발이 빠르지 않은 포제봉은 전후좌우로 넓게 움직이지는 않는 모습을 보였고,
수비적인 상황에서는 포백 바로 앞까지 내려왔지만 공격적인 상황에서는 중앙에만 머무르며
다소 정적인 형태의 경기 운영 능력을 선보였다는 점이 장점이자 단점으로 생각된다.
대신 이번 경기에서 이러한 포제봉의 부족한 활동량을 멋지게 메꾸어 준 것은
19년째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하고 있는 최고의 베테랑인 라이언 긱스였다.
나니와 호날두를 이끌고 웰백을 지원한 긱스는 과거와 같은 폭발력은 줄어들었어도
적재적소에 나타나는 존재감과 날카롭게 뿌려주는 패스에 확실한 세트피스까지,
왼쪽 측면 뿐 아니라 최전방과 오른쪽에서도 맹활약하며 포제봉과 멋진 짝을 이뤘다.
정적인 포제봉과 동적인 긱스의 조합은 공격진의 1선과 2선에 구심점을 만들었고
그것이 어린 선수들로 구성된 유나이티드의 공격이 원활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였다.
또한 후반 막판 연이어 터져나온, 결승골이 포함된 긱스의 멋진 슈팅들은
그의 재능과 수준이 아직까지도 세계 최고급이라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포제봉과 함께 눈에 띄는 활약을 한 신예는 오른쪽 풀백으로 나선 하파엘 다 실바였다.
브라운이 센터백으로 자리를 옮긴 가운데 오른쪽 수비를 책임진 하파엘은
보로의 에이스인 다우닝을 상대로 전혀 뒤지지 않는 원숙한 수비력을 선보였는데,
속도와 몸싸움에서 전혀 밀리지 않으면서도 브라질리언 특유의 리듬감을 앞세워
상대의 호흡을 빼앗은 뒤 공을 채내는 움직임을 다수 만들어내며 돋보였다.
게다가 적극적으로 오버래핑에 나서며 공격 작업에도 확실히 가담하면서
중앙으로 파고드는 경우가 많은 유나이티드의 윙어들의 빈 공간을 채워내었다.
많이 움직이고 빠르고 수비와 공격에 모두 능한 풀백의 존재는 언제나 보배로운 법.
날카롭고 정확한 크로스를 많이 보여주지 못한 것이 약간 걸리기는 하지만
부상 중인 파비오와 함께 유나이티드의 좌우 측면을 지킬 인재로 충분해 보인다.
최전방에 포진한 대니 웰벡은 프레이져 캠벨과 비슷한 느낌으로 재빠름을 보였지만
스트라이커로서 결정적인 마무리를 짓지 못했다는 점은 다소 아쉬움으로 남았고,
골키퍼 벤 아모스는 그닥 할일이 없었다는 점에서 평가가 어렵기는 하지만
반 데 사르의 뒤에 쿠시챡과 포스터가 있다는 걸 고려하면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
포제봉과 긴급 교체된 대런 깁슨은 다소 슈팅을 무리하게 시도하기는 했지만
섬세하고 침착한 포제봉에 비해 선이 굵은 경기력을 선보인 것이 긍정적이어서
유나이티드의 중원에 보다 넓은 폭의 공격 옵션을 제공할 것으로 생각된다.
후반 84분에야 투입된 마누초 역시 특별한 활약이 가능한 시간은 아니었어도
당당한 체구로 베르바토프 이상의 제공권을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렇듯 사실상 데뷔전을 치룬 신예 선수들이 나름 준수한 활약을 보여준 가운데,
이미 주전 자리를 위협하고 있는 안데르송과 나니는 장과 단을 나누어 보여주었다.
포제봉과 중원엘 자리잡았던 안데르송은 전후좌우로 끊임없이 넓게 움직이며
특유의 활동량과 피지컬을 바탕으로 보로의 선수들을 계속해서 괴롭혀주었다.
특히 왼쪽 측면을 따라 폭발적인 돌파를 여러 차례 보여준 장면은 인상적이어서
자신보다 더 큰 선수들에게 밀리지 않으며 멋진 기회를 팬들에게 보여주었다.
반면 나니는 후반 추가 시간에 쐐기골을 성공시키며 잘한 듯 하지만
경기 내내 쓸데없이 공을 끌고 개인기를 부리는 시간이 너무 많았고
지나치게 이기적인 모습만으로 일관해 팀 공격의 맥을 툭툭 끊어놓았다.
점차 날카로워지고 있는 묵직한 슈팅만이 나니의 활약이었을 뿐이기 때문에
착실히 쌓아나가고 있는 개인 기록에 비해 팀 공헌도는 형편없을 따름이다.
이런 점에서 오늘 출장하지 못한 박지성에 대한 논란은 치워둬도 괜찮을 듯 하다.
많은 한국 팬들이 기대했던 경기이기는 하지만 오늘의 결장이 치명적이지 않은 이유는
첼시 원정에 참여했던 "주전급" 선수들이 모두 대기 명단에서까지 제외된 경기였다는 점이다.
게다가 득점력 때문에 종종 선택되던 나니가 여전히 팀 플레이에서 낙제점을 받은 데다가
박지성이 지난 경기에서 득점에 성공했다는 점까지 생각해 본다고 한다면
도리어 이번 결장은 나니보다 주전 경쟁에서 앞서나간다는 것의 반증일 것이다.
게다가 퍼거슨 감독의 인터뷰가 언제나 그렇듯 전략적으로 활용된다는 것은
이번 경기 직전의 인터뷰도 그러한 맥락에서 고려해야 할 것이다.
올드 트래포트에서의 단판 경기이기 때문에 수비적으로 나설 수 밖에 없었던 보로를 상대로
안데르송-포제봉이라는 다소 공격적인 미드필더 구성을 선택한 것은 결과적으로 성공이었다.
부상에서 복귀해 점차 상태를 끌어올리고 있는 호날두가 마음놓고 활약할 수 있도록
긱스와 안데르송을 동시에 투입하여 넓게 움직이게 한 것도 공격에 도움이 되어서
전반 내내 보로를 상대로 압도적인 경기를 선보일 수 있었던 것이다.
그 와중에 터져나온 호날두의 헤딩 복귀골은 화려하진 않아도 달콤해서
이번 시즌 팬들을 힘겹게 하고 있는 득점력 저하의 가뭄에 내린 한줄기 빗줄기 같았다.
후반 들어 쇼키 대신 아담 존슨을 투입하며 측면 공격을 강화함과 동시에
다우닝을 자유롭게 공격하게 만든 사우스게이트 감독의 전술 변화가 성공하며
유나이티드의 중원을 압박한 것이 팬들의 마음을 다소 불안하게 만들었다.
특히 수비 개념이 전혀 없는 나니와 아직 경험이 부족한 웰벡이 포진한 데다가
체력이 조금 부족한 긱스까지 포함된 공격진에서 수비 가담이 제일 좋았던 것은
도리어 부상에서 갓 복귀한 최전방의 포워드 호날두였다는 사실은
정적인 포제봉의 중원과 더불어 수비진의 부담이 상당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아담 존슨에게 불의의 일격을 당하며 또다시 승리에서 멀어지는 듯 했던 유나이티드는
오셔와 하파엘이 분전한 가운데 수비 조율보다는 대인 마크에 강점을 가진 두 센터백,
브라운과 비디치가 경기 내내 이전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여주다 불안해지기도 했지만
포가테츠의 퇴장과 그로 인해 투입된 리곳의 실수를 틈탄 긱스의 결승골로
어쨌거나 올드 트래포트에서의 이번 시즌 첫번째 승리를 만들어내었다.
종료 직전 터진 나니의 추가골은 가벼운 보너스라고 봐도 무방할 듯.
비디치-브라운의 센터백 조합은 확실히 대인 마크에 강점을 가진 선수들의 조합이고
브라운이 오른쪽 풀백으로 활약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다소 불안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그나마 이번 경기에서는 좀 더 나아진 호흡을 보여주면서 앞으로를 기대하게 했다.
유나이티드 수비의 핵심인 퍼디낸드의 부재시에 가동되는 이 센터백 조합은
브라운이 오른쪽으로의 커버 플레이가 무척 좋다는 점이 장점이 되기 때문에
가끔 겹치거나 떨어지면서 공간을 내어주는 문제만 해결하면 될 것으로 보인다.
오늘의 실점 장면도 비디치가 뒤로 물러나면서 생긴 공간을 브라운이 채우지 못하며
아담 존슨에게 자유로운 슈팅 기회를 내어준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후반 막판 투입된 테베즈마저 체력이 떨어진 긱스의 활동량을 멋지게 채워주면서
경기 내내 어린 선수들의 공격진이 좋은 모습을 보여준 것이 희망적이었던 이번 경기는
지난 시즌 칼링컵에서의 코벤트리 시티에게 당한 충격적인 패배를 되갚음과 동시에
이번 시즌 시작부터 이어지고 있는 다소간의 부진을 털어낼 수 있는 좋은 전환점이 되었다.
2선에서의 화려한 스위칭에 이은 공격과 미드필더에서의 끈끈함도 되찾았고
호날두와 긱스, 나니의 득점도 공격진의 득점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었다.
다만 보로보다 더 강력한 중원을 가진 클럽과의 승부에서 가져갈 수 있어야 한다는 점과
베르바토프가 포함된 공격진에서의 원활한 공격도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 남아있다.
어쨌든 달콤한 호날두의 골과 올드 트래포트에서의 승리를 맛본 유나이티드는
앞으로 이어질 길고긴 시즌을 헤쳐나갈 가장 강력한 원동력을 얻어내었다.
그것은 바로 오늘 맛본 승리의 달콤한 맛이며, 그것은 끊임없는 열정으로 얻을 수 있다.
오늘 어린 선수들이 보여준 그 열정의 매력이 주전들에게도 이어지길 바란다.
또한 포제봉의 부상이 큰 부상이 아니길 빈다.